친일파
입력 1999-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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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8-0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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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국회는「반민족행위 특별법」을 만들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친일파 숙정에 나섰다. 관동군 촉탁 이종영, 화신재벌 총수 박흥식, 최남선, 이광수, 최린, 김연수 등이 쇠고랑을 찼다.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반민족특위는 대통령 이승만에 의해 1년만에 해산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친일파 문제는 역사적 심판대에 오른 적이 없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건 친미파 이승만 정권에 의해 그들의 처단이 와해되고, 6·25전쟁과 5·16군사 쿠데타에 의한 군사정권 출범으로 그들은 오히려 핵심 세력으로 군림했다.
친일파를 엉뚱하게 독립 유공자로 만들어 훈장을 수여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의 한 사람인 이갑성(李甲成)의 일본 이름은 이와모도(岩本正一). 그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을 지냈으며, 상해에서는 일제의 밀정 노릇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가 1962년 독립운동 유공자로 추켜세워져 훈장을 받았고, 사망하자 국립묘지 독립유공자 묘역에 묻혔다. 해방후 초대 내무장관과 서울시장, 공화당 의장을 지낸 윤치영(尹致映)은 1982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그 역시 1941년 친일잡지「동양지광」이 주최한 미영타도 좌담회에 나가「팔굉일우(八紘一宇)와 황민의 사명」을 외치는 등 친일을 한 사람이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고통을 받은 유공자와 그들의 자녀들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와는 달리 친일파들과 그들의 자녀들은「좋았던 시절」에 모아 놓은 재산으로 영화를 누리며「귀족」대접을 받기도 했다.
광복회(회장 윤경빈)는 지난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친일파 청산과 민족정기 대학술대회」를 가졌다고 한다. 지금은 친일파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학술적으로나마 반만족행위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내림으로써, 민족 정기를 세우겠다는 게 학술대회의 뜻일 것이다./Shinsm@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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