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제법 많아졌다. 그의 그림 한 장 보지 않은 문외한도 그가 분단조국의 현실을 몸으로 겪어내며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었다는 얘기는 안다.
그의 조형언어 모두를 알아듣지는 못하는 아마추어도 수천 민중이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그림 앞에서 가슴이 새삼 뜨거워짐을 느낀다.
수준높은 심미안을 갖춘 전문가들은 그가 창조한 미의 세계를 두고두고 음미한다. 기대와 설렘 속에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의 작품 80여점이 내일 수원을 찾아온다.
17일까지 경기도문화예술회관 대전시실에서 경기도의 관람객을 기다리게 된다.
그가 타계한 지 10년. 세계 화단(畵壇)이 감탄한 그의 묵향(墨香)은 국내에서도 드높아졌다. 동백림간첩단사건도 백건우·윤정희부부 납북기도사건도 더이상 대가(大家)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지 못한다.
아니, 문외한과 아마추어는 우리의 아픈 현대사와 한 예술가의 생애가 비극적으로 얽혔던 기억으로 인해 더욱 열광하는 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도 고암에게 빚이 많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조국은 살아생전 그를 외면했다. 쉰넷 나이에 프랑스로 떠난 그를 딱 한 번 납치해다가 차디찬 감옥살이를 시켰을 뿐이다.
범인(凡人)은 환멸만을 느꼈을 상황을 거장은 예술로 승화시켰다. 우리가 뒤늦게 호들갑을 떨기 훨씬 전에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것의 진가를 세계무대에서 입증했다.
만년에도 '통일조국베개'를 베고 눕는 시간 외엔 쉼없이 '통일무'를 그렸다고 한다. 조국사랑과 예술을 둘로 가를 수 없는 고암의 치열한 정신을 우리는 지금 얼마나 이어가고 있는가.
사실 예술가의 생애를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화가의 언어는 그림이다. 무엇을 듣고 느끼느냐는 관람자의 몫이다.
어쩌면 저 세상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통일을 형상화하고 있을 고암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줍잖은 소리에 귀기울이지 마시고 직접 와서 내 얘기를 들어보지 않으시겠소.” 내일이 기다려진다.
고암 이응노
입력 199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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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1-1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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