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고려의 왕건에게 나라를 내주었을 때 마의태자는 비단옷을 삼베옷으로 갈아입었다. 망국의 슬픔을 안고 금강산에 들어간 것이다.

평민이 되었으므로 마의태자가 삼베옷을 입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직계 가족이 상을 당하면 삼베옷을 입듯, 여기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철학의 깊이가 있다.

지금도 수의를 만들 때 삼베를 사용한다. 죽은 이의 저승길에 삼베옷이 동행하는 것이다. 삼베옷에 얽힌 철학은 그렇게 심오하다.

우리에겐 이처럼 자연과학의 법칙만큼이나 삶을 지배하는 사회과학법칙이 오랜 역사를 두고 관철돼 온 것이다.

 삼베를 만드는 것도 우리네 정서를 만드는 데 한몫한다. 삼밭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밭이나 논의 일부를 사용한다. 삼으로 천을 만드는 과정 또한 힘들고 어렵다.

'남산선수 관솔가지/앞마당에 피워놓고/곡성석곡 진삼가리/어서 삼고 바삐 삼세/붕에눈을 부릅뜨고/곰배팔을 바삐 놀려/송곳니를 앙물고…' 삼을 삼는 어머니들의 힘든 모습은 이같은 노래에서 엿볼 수있다.

밭에서 삼을 거두어 뜨거운 물에 삶아야 하고, 그것의 껍질을 벗겨 한 올씩 찢어 올과 올을 연결시켜야 한다. 얼마나 고달프면 밤중에 관솔불을 켜놓고 작업을 하면서 "어서 빨리 삼을 삼자"고 노래했을까.

작업은 여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삼을 베틀에 걸어놓고 베짜기의 본격적인 작업이 남은 것이다. 이처럼 삼베를 만드는데는 모두 35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

마를 수확하는 데 17단계, 이것을 가공하는 데 18단계인 것이다.

 어머니들의 그런 노력과 정성이 삼베에 담겨 있기에 상을 당하면 가는 사람과 남은 사람 모두가 삼베옷을 걸친다. 분만을 할 때에도 산모가 삼베끈을 잡고 진통을 참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삼베가 차지하는 소중한 가치가 크다는 걸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의 삼베가 중국 것에 훼손당하고 있다. 화학사를 섞어서 썩지도 않는 중국 제품의 가짜 삼베가 국산으로 둔갑해 비싼값에 팔리고 있는 것이다. 황폐한 사회의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