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에 따르면 용은 원래 순한 동물이다. 길을 들이면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용의 목에는 거꾸로 돋아난 비늘이 하나 있다.

그것을 역린(逆鱗)이라고 부른다. 잘못하여 역린을 스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 왕에게도 역린이 있다. 왕을 설득하려고 하는 자는 왕의 역린을 건드려 노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왕(우두머리)의 노여움'을 뜻하는 역린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한비자(서기전 145~86)는 전국시대(戰國時代) 한(韓)나라의 왕손으로 태어났으나 서자(庶子)인데다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보고 덕치가 아닌 법치를 주장했으나 자신의 나라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뒷날 중국천하를 통일한 진(秦)왕실에서 그의 재주를 알아보고 그를 초빙했으나 예전에 함께 공부했던 이사(李斯)의 계략에 빠져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그는 왕의 역린만 알았지 친구의 질투심이라는 역린은 몰랐던 모양이다.

 한비자의 지적은 인간과 처세에 관한 썩 훌륭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은밀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고, 이를 함부로 건드리게 되면 저절로 될 일도 망치게 된다.

절친한 친구간에도, 부부간에도, 심지어 부모자식간에도 상대의 역린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오늘날 고객은 왕이므로 무심코 손님의 역린을 스치는 상인은 성공할 수 없다.

 문제는 역린이 많은 조직은 개혁을 이뤄내기 힘들다는 데 있다. 시대에 맞춰 변신을 해야 하지만 아랫사람들이 행여 웃분의 아픈 곳을 건드릴까 염려하여 몸을 사리는 곳에는 `복지부동', `무사안일'만 판을 치게 된다.

이럴 경우 남는 것은 조직의 `동맥경화'다. 우두머리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고 일을 풀어가는 지혜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모두를 위해 역린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더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지도자 스스로 역린을 뽑아내 버린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