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은 공동체의 의식(儀式)이자 의식(意識)이다. 한 자리에 모여 제의(祭儀)를 갖는 것은 아닐지언정 집집마다 같은 때에 같은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공동의식이요, 그렇게 되풀이되는 풍습을 통해 끈끈한 유대감과 삶의 동질성을 확인한다는 의미에서 공동의식이다.

명절만 되면 문헌을 뒤져서라도 풍화되고 화석화된 세시풍속을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의 저 아래켠에는 사라져가는 공동체에 대한 아쉬움과 향수가 자리잡고 있을 터이다.

 지금은 집안 어른의 기억이나 TV 속 한복입은 민속학자의 설명에나 남아 있는 민속 중에, 설날부터 열 이틀 동안 12간지 일진(日辰)에 따라 금기와 해야 할 일을 정해 놓고 지키던 풍습이 있다.

`백리(百里)를 벗어나면 풍속이 같지 않다'는 옛말대로 모든 고장이 똑같지는 않았지만 전국적으로 이어져 온 세시풍속이다.

예를 들어 첫 쥐의 날은 상자일(上子日)이라 하여 만사를 제쳐 놓고 쉬었으며 아이들은 논^밭두렁에 쥐불을 놓았다.

 또 첫 소의 날(上丑日)에는 소의 힘을 빼앗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칼질과 쇠붙이 연장을 다루지 않았고, 첫 범의 날(上寅日)은 호환의 액을 막기 위해 외출을 삼갔다.

남보다 먼저 우물물을 길어오면 복이 있다고 믿어 `용알뜨기'를 하는 첫 용의 날(上辰日), 피부 검은 사람이 왕겨 따위로 문지르면 살결이 고와진다고 믿은 첫 돼지의 날(上亥日)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은 이런 식으로 정초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했다.

지금은 `전근대적 미신과 농경사회의 유제'로 치부되는 이런 풍속 속에 우리가 되살려야 할 공동체적 정신은 정녕 없는 걸까.

 오늘은 돌아가는 날이다. 열 두시간 차가 막혀도, 선물꾸러미가 가벼워도 고향으로, 전통으로 되돌아 가는 날이다.

가서, 마지막 남은 세시풍속인 떡국차례와 성묘와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어야 한다. 가고오는 길에 아련한 설날 추억 한 자락 끄집어 내고, 이 `과속의 시대'에 되살릴 정신은 없는 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일도 무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楊 勳 道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