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바젤시(市) 출신의 지나 비네티(43·여)씨가 충북 옥천에 정착한 게 올해로 벌써 6년째를 맞는다.

옥천 출신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대표작〈향수(鄕愁)〉에 빠져 그곳에 머물고 있다. 향수는 고향이 그리워 느끼는 우수 또는 시름이며, 단절됨으로써 느끼는 심리상태다.

〈향수 병〉을 앓던 그녀는 비로소 산수시(山水詩)를 썼던 한 시인의 고향에서 시름을 잊은 것일까.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치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녀가 매료되었다는〈향수(鄕愁)〉의 일부다. 1903년 충북 옥천애서 출생한 정지용은 6·25전쟁중 서대문 형무소에서 평양 감옥으로 이감되었다가 생을 마감했다.

한국 현대 시사(詩史)에서 `언에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이었던 그는 산수시를 지향했었다.

〈구성동(九城洞)〉이란 시에서 그는 한 폭의 산수화의 세계를 이룬다. `골짝에는 흔히/유성이 묻힌다.//황혼에/누리가 소란히 쌓이기도 하고,//꽃도/귀양사는 곳…' 유성이 묻히고, 누리가 쌓이고, 꽃도 귀양사는 곳이 그가 그리던 이상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곳에 숨고 싶었던 것 같다.

현실 속에서 그는 스스로 정신적 귀양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문장〉을 통해 박목월(朴木月)·조지훈(調芝薰)·박두진(朴斗鎭) 등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켰고, 이상(李箱)을 시단에 내세우기도 했다.

 단절이란 치유를 모르는 아픔이다. 그러기에 정신적 고요의 공간을 갈망하기 마련이다. 이국 땅에서 양예진(洋藝眞)이란 이름으로 한글 시를 쓰는 비네티씨는 치유를 손에 넣은 사람인 것같다.

그녀는 91년 한국에 입국해 어느 기업에 근무했었다. 이제는 `실개천의 옛 이야기'를 들으며 사는 그녀가 유독 세인들의 눈에 신비하게 비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구석구석 원형이 훼손된 사회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辛 世 默〈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