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후 미국은 급속한 산업화로 자본주의 발전에 박차를 가한다. 원래 미국은 넓은 영토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데다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 물결이 값싼 노동력을 얼마든지 제공했다.

산업화는 대륙 횡단철도의 완성으로 그 절정을 맞게 된다. 하지만 철도망 팽창은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특혜와 부정부패로 얼룩졌다.

기업들은 이른바 정경유착을 통해 막대한 국유지를 철도부설 부지로 받았으며 각종 보조금과 융자금까지 얻어냈다.

이런 와중에 뇌물과 매수, 다른 회사들과의 무자비한 경쟁, 독점 형성에 의한 해당 산업분야 지배, 노동자 착취 등의 방식으로 소위 재벌이란 게 태동한다.

석유로 최초의 재벌이 된 록펠러나 철강왕 카네기 금융왕 모건을 비롯, 아스터 필드, 굴드 등이 모두 이때를 전후로 등장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런 염치없는 기업가 중에도 뒤늦게나마 사회에 그 몫을 되돌린 인물들이 있다. 누구보다 카네기가 그랬다.

그는 1901년 사업 은퇴와 함께 자신이 번 돈을 몽땅 자선사업과 문화사업에 기부했다. 공공도서관 박물관 학교 자선법인 설립 등에 무려 3억5천만달러, 지금 돈으로 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내놓았다.

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富)를 쌓았지만, 그는 ‘부는 신으로부터 잠간 맡겨진 것’이란 신념으로 부를 사회에 되돌려준 ‘신화’를 남긴 인물이 된 것이다.

 정부수립 때부터 귀속기업체 불하, 원조물자 배분과 금융지원 등의 특혜를 받으며 출발, 역대정부 보장 아래 독과점을 통한 초과이윤 획득, 노동자 착취, 내·외자 배분상의 특혜, 관세와 융자상의 특혜 등을 통해 급성장한 대부분의 한국 재벌들.

이제 그들 거의가 2대 3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중엔 비록 2세 3세들끼리 재산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은 벌일망정 그 누구도 카네기를 닮으려는 인물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아마도 이런 게 미국과 다른 점인지 모르겠다. ‘뭣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도 있던데. 아쉬움을 느낀다면 좀 우둔한 걸까.

朴 健 榮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