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은 중국의 차(茶)를 무척 좋아했다. 1785~1833년 사이 영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해간 물품 가운데 90%가 차였다.

반면 영국이 주요 수출품목으로 크게 기대했던 모직물은 중국시장을 휘어잡지 못했다. 이런 무역역조를 영국이 두고볼 리 없다.

영국은 수출이 신통찮은 모직물 대신 아편에 눈을 돌린다. 식민지 인도에서 농민들을 회유 협박하여 아편을 재배시킨 뒤 중국으로 대량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중국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편이 물밀듯 밀려오면서 흡연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사회 전분야가 엄청난 후유증을 앓게된다.

아편흡입은 상류계층에서 빈민층, 심지어 부녀자와 승려들에게까지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1830년대 중반 이후 아편 중독자 수는 적어도 200만이 넘었다. 특히 심각한 건 모든 성의 관료와 병사들에게까지 아편흡입 풍조가 퍼져 있었다는 점이다.

관료와 군대의 아편중독은 곧 국가기능의 마비를 뜻한다. 견디다 못한 당시 청(淸)나라 정부는 항구에 쌓여있던 아편을 불태워버리고 영국상인들에게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기회만 엿보던 영국이 마침내 이를 빌미로 1840년 전쟁(아편전쟁)을 일으켰고, 무력할대로 무력해진 중국군은 일거에 격파당한다.

그리고 중국은 1842년 홍콩 할양 등 13개항의 불평등조약(난징조약) 체결과 함께 막대한 배상금까지 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최근 우리나라도 마약 중독자가 급격히 늘어 사회 곳곳이 병들고 있다. 지난 해 검찰에 검거된 마약사범이 1만명을 넘어섰다지만, 실제 투약자는 2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3~4년내에 50만명을 넘어서리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신세대들 사이에선 테크노바 등에서의 ‘환각파티’를 마치 ‘문화적 대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긴다고 한다.

이쯤되고 보면 아편전쟁 당시의 중국을 비웃을 처지가 아닐듯 싶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몰고 가는지, 정녕 뾰족한 처방책은 없는 것일까.

한탄만 하고 있기엔 사태가 너무 급박하다.

朴 健 榮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