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쇼생크 교도소에 갇힌 모범재소자(팀 로빈슨 분)가 어느날 책을 정리하다가 음반을 한 장 발견한다.

간수의 눈을 피해 방송실로 들어간 그는 문을 닫아걸고 구내방송을 통해 레코드를 틀어놓는다.

감옥 안을 꽉 채우는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 운동장에서 온갖 잡스러운 행동을 하던 흉악범들이 일순 손을 놓고 얼어붙은 듯 흐르는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카메라는 당혹감에서 감동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그들의 표정을 포착한다.

 강화출신 여류화가 이은지씨가 한 달여의 노력끝에 수원구치소 여자 사동과 실내운동장 벽면에 풍경화를 그렸다는 기사(본보 6월10일자 19면)를 보면서 난데없이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장면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쇼생크와 수원구치소를 같은 평면에서 비교하는 것은 분명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양 쪽의 수인(囚人)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예술의 향취를 접하고 느꼈을 진한 감동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비록 신체의 자유는 박탈당하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다면 좀처럼 맛보기 힘든 경험이다.

 오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는 벽에 그린 그림이 죽음의 공포와 절망마저 극복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벽화는 추한 모습을 감추려는 단순한 치장이나 보는 이의 눈을 속이기 위한 위장 이상의 무엇이다.

더욱이 교도소 내벽에 그려진 것은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를 향한 꿈과 희망의 창(窓)이자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들어가는 정신적 문의 다른 이름이다.

 이은지씨는 앞으로 수원구치소의 27개 남자 사동 벽에도 창과 문을 달아줄 예정이라고 한다.

쇼생크의 아리아는 깜짝 놀란 간수들이 방송실 문을 뜯고 들어가 중단시킴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난다.

하지만 살풍경한 구치소 콘크리트벽에 풍성한 색채로 수놓은 전원풍경은 두고두고 재소자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을 것이다.

자청해서 하루 6시간씩 붓을 잡고 있다는 이씨의 노고와 교도소측의 배려에 다시한번 박수를 보낸다.

楊 勳 道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