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아들의 ‘수호천사’로 한평생을 보낸 홀트아동복지회 설립자 버서 홀트여사.

향년 96세로 생을 마감한 그녀가 엊그제 일산 홀트복지타운내에 있는 남편 해리 홀트의 무덤 곁에 묻혔다.

비록 미국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남편이 묻힌 한국 땅에서 눈감고 싶다”던 생전의 고인 뜻에 따른 것이다.

 그녀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한국의 혼혈 고아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것을 계기로 남편과 함께 고아 입양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남편 해리는 목재사업을 하던 백만장자였으나 심장마비로 죽음 직전까지 가는 체험을 한 뒤 ‘남은 삶을 주신 신께 보답’한다는 생각에서 아내와 뜻을 같이 했다.

그때 이미 6명의 친자식이 있었지만, 한국 고아 8명을 미국에 데려다 키우면서 아동복지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입양사업을 시작했다.

 “어린이들은 가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 친부모가 됐든 양부모가 됐든 아이들은 1대 1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할 수 있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고아원도 가난한 한 가정만 못하다.” 홀트부부가 평생을 믿고 실천해온 신념이다.

이들이 세운 복지재단은 그간 한국 고아 7만여명의 해외입양을 알선하고 1만8천여명에겐 한국에서 새 가정을 찾아주었다.

특히 홀트여사는 64년 남편이 사망한 이후 재단을 이끌어 오면서 입양사업도 러시아 중국 베트남 등 세계 곳곳으로 넓혀왔다.

최근에 그녀는 테레사 수녀 등이 수상한 ‘키스와니 세계 봉사상’을 받았다.

우리 정부도 지난 9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해 그녀의 사랑을 기렸다.

 고아들의 자애로운 할머니로서 인류애의 상징이기도 했던 홀트여사. 그녀를 보내면서 새삼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생전에 그녀가 보여준 참사랑의 실천에 깊이 감명하면서도, 한편으론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이 못내 부끄럽기도 하다.

지난해만 해도 고아 해외입양이 무려 2천400여명이었다. 전쟁이 끝난지 반세기 가까이 지났고 경제수준도 살만큼은 됐다는데도.

朴 健 榮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