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한강유역의 요새'. 요즘 경기도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기획전의 타이틀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고구려군의 보루가 눈길을 당긴다. 전시관 안에는 칼 창 도끼 항아리 토기 벽돌 명문기와 등 유물과 복원된 온돌 모형이 설치돼 있다.

서울대학교 발굴조사단이 한강 부근 아차산과 구의동 일대에서 최근에 수습한 것들이다. 비록 군사유적에 치우친 전시회지만 반갑고 귀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남쪽에서는 고구려인의 숨결이 묻은 유품을 직접 접해볼 기회가 드물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으로 눈을 돌린 것은 광개토호태왕 때부터다. 광개토왕은 즉위 초부터 백제를 공격해 58개성 700개 촌을 빼앗고 백제왕의 항복을 받기도 했다.

당시 고구려군은 동아시아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막강 군대였다. 이어 장수왕 때엔 아예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본격적인 남진정책을 폈다.

장수왕은 서기 475년 백제의 도읍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의 목을 베었다. 이로써 500년 한성 백제는 막을 내렸고, 고구려가 6세기 중엽까지 한강의 주인이 되었다.

1천500년 이상 깊은 잠을 자다가 모습을 드러낸 이번 전시 유물들은 이 무렵의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기간은 180년 남짓 하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이 겨레의 강역을 한반도로 한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난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민족사적 의의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부족국가 시절부터 끊임없이 자기 것으로 흡수·축적 시켜온 대륙계 북방문화를 백제·신라 문화와 융합시킴으로써 오늘날 한민족 문화의 원형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차산 보루를 지키던 고구려인은 아마 자신들의 역사적 의미까지는 의식하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남과 북이 다시한번 융합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런 추세와 속도라면 역사학자들이 남과 북을 자유로이 오가며 고구려사의 온전한 모습을 복원할 날도 멀지 않은 듯 싶다.

전시회의 유물들도 민족사의 전기를 잘 살려가기를 바랄 것이다.

楊 勳 道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