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쌍둥이를 낳은 사람에게 나라에서 큰 상을 내렸다. 한 줄기에 2개의 이삭이 달린 벼를 꺾어 나라에 바쳤다.' 이런 기록은〈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종종 접할 수있다.

흔치않은 이런 현상을 상서로운 조짐으로 보았기 때문에 남긴 기록일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당시의 성(性)은 다산과 풍요의 신성한 대상으로 숭배되었음직하다.

 실제 성기숭배신앙(Phallicism)은 구석기시대이래 세계 도처에서 행해졌다. 비너스상은 여체의 가슴과 둔부를 과장되게 표현한 석제 조각상으로 볼 수있다.

고고학계의 보고를 보면 남녀의 성기를 과장하여 표현한 암각화와 성적 결합을 표현한 작품들이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다수 확인되고 있다.

특히 남성 성기 모양의 석제 조각품 가운데는 한쪽 가장자리가 뭉개진 흔적이 있어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샤먼이 의식을 행하는 과정에서 조각품을 쥐고 흔든 흔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조각품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 종교 주술적 도구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선사 및 고대사회에서도 성은 다산과 풍요를 담보해 주는 숭배의 대상으로 생각되었던 듯하다.

함경북도 경원 농포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여체상은 가슴부위가 크고 허리가 잘록하다. 이것은 크게 보아 비너스 계통의 유물로 분류할 수 있으며 풍요와 다산을 비는 신앙의 대상으로 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경주 안압지에서도 남성의 성기모양을 조각한 목제품이 발견되었다. 신라 토기 가운데엔 남녀가 교접하는 장면을 토우(土偶)로 만들어 토기 몸체에 붙인 것이 눈에 띈다.

이런 토기가 무덤의 껴묻거리로 부장되기도 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다산과 풍요를 보장받고 싶은 신심(信心)을 표명했다고 보여진다. 성은 그렇게 엄숙하기까지 했었다.

 `원조교제'라는 걸 하다가 수갑을 찬 사람들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뉴수거리로 등장하곤 한다.

성문화가 타락했음을 보여주는 극단적 단면이다. 엥겔스가 파악했듯 발정기를 맞아 사회를 파괴시키곤 했다는 동물계의 실태를 교훈으로 새겨 봄직하다.

辛世默〈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