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파리시의 관계자들은 다분히 모험적인 결정을 내린다. `3년후 열릴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거대한 기념비적 타워를 건설하겠다'는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1832~1923)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에펠이 센강변에 세우려는 초대형 철탑은 높이가 312m나 됐다. 당시로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스케일이다. 그것도 돌·벽돌 따위 전통 건축자재는 전혀 쓰지 않고 철구조물만 사용해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80층 건물 높이의 쇳덩어리 괴물을 세워 아름다운 파리를 망치겠다고?'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뒤마, 모파상, 프루동 등 당대의 지성인들이 탑건설을 막기 위한 연대청원서를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는 등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2년 후인 1899년 1만5천여개의 철재와 250만개의 리벳만을 사용한 늘씬한 철탑이 우뚝 섰다. 신기한 철탑을 보려는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 줄을 이었다. 오늘날 프랑스를 상징하는 `철(鐵)의 귀부인' 에펠탑은 그렇게 탄생했다.
탑 중간에 들어선 카페에 자주 드나들던 모파상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건설 전에는 그토록 반대하시더니 결국 탑이 좋아지셨나요?” “아니요. 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은 이곳 뿐이거든요.” 에펠 또한 말년에는 자신의 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탑 꼭대기 자신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가 탑을 싫어한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는 잊어버리고 탑만 기억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에펠탑과 관련한 너무도 유명한 일화들이다.
수원시 이의동에 들어설 화성관망탑 건립이 우여곡절 끝에 본격화될 것으로 알려졌다.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인 화성(華城)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의 상징물을 세우자는 취지다. 그것이 화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이왕 세울 탑이라면 에펠의 모방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후일 눈밝은 이들이 관망탑 꼭대기에서 화성이 맞고 있는 문제점과 과제가 무엇인지 단박 알게 된다면 더욱 좋고...
(양 훈 도)
화성관망탑
입력 2000-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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