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기경에 인구가 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유럽의 도시 근처엔 상업촌이 생겼다. 교통이 편리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상인들은 그러다가 상업촌에 영구 거주지를 건설해 장사를 했다. 신도시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때부터 이들을 `부르주아(bourgeois)'라 불렀다. 오늘날 자본가를 뜻하는 말이다.
 상인들을 비롯한 시민들은 도시에 애착심이 높았다. 도시는 곧 고향이자 삶의 공동체였다. 국민이라는 생각보다는 시민이란 의식이 더 강했다. 그런 관념이 배타적으로 발전하면서 다른 도시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보았다. 도시 당국도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 장사하는 것을 통제했다. 시민 복지를 위해 서였다. 이같은 한 형태가 `길드(guild)'이다. 당시 도시는 영주의 지배밑에 있었다. 농노 신분인 농촌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상업활동에 쓰이는 상자와 수레 만들기, 상품 수송을 했다. 나중엔 대장장이와 빵을 만드는 사람, 푸줏간경영자 등이 속속 모여 도시는 번창했다. 영주는 시장세와 거래세, 통과세 등을 거둬들이며 부를 더욱 축적했다. 이들 시민들이 영주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기까지엔 무려 30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결국 이들은 영업의 자유와 자치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영주의 법이 아니라 자신들이 운용하는 재판소도 만들었다. 13세기경엔 거의 모든 도시가 자치권을 획득했다. 농민 출신도 자유인으로 활동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낳는다'는 말이 이때에 생겼다. 근대사회의 싹은 그렇게 돋은 것이다. 지금은 국가의 벽이 허물어졌다. 제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가 20일부터 서울에서 열렸듯 글로벌화된 것이다.
 회의에 맞춰 국내외 160여 민중단체와 시민단체 1만5천여명이 서울에 모여 시위 등 행동을 벌였다. 시애틀과 프라하, 그리고 서울로 이어진 세계화를 반대한 `거리의 행사'이다. 초국적 금융자본이 개도국 경제를 거덜나게 하고 구조조정 등으로 근로자를 몰아내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반대한 것이다. 서글픈 모순이다.
 辛世默〈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