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9월 13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세기적 화해가 이뤄졌다. 주인공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총리 라빈이다. 이들이 이스라엘 점령지역인 가자지구와 예리코시에서 팔레스타인 민족의 자치를 인정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한 것이다. 이로써 2000년 전 조상들 땅이었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곳에 1948년 나라를 세운 유태인들의 이스라엘이 인정받은 셈이 됐고, 살곳을 잃고 떠돌던 팔레스타인인들도 고향땅 한 귀퉁이에 자치정부를 세우도록 허락 받았다. 〈유시민 지음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수십년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 평화가 깃드는듯 싶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이스라엘 과격 시온주의 세력과 팔레스타인 회교원리주의 세력이 이를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크고 작은 충돌과 반목이 그칠줄을 몰랐다. 게다가 예루살렘 옛시가지에 자리잡은 이른바 ‘신전언덕’이 문제를 한층 꼬이게 만들고 있다. 팔레스타인측은 이 언덕에 마호메드가 승천한 곳으로 알려진 황금돔과 이슬람 성소인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만큼 이곳을 수도로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이스라엘측은 3000년 전 솔로몬왕이 신전을 세운 곳이라 결코 주권양도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 과격 리쿠드당 당수인 샤론이 돌연 이슬람교도들이 관리하던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 또 다시 유혈충돌이 촉발됐다. 이미 150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내면서 참극은 한달을 넘기고 있다.
 2000년 전 고토회복에 반세기 전 고토 일부회복을 둘러싼 분쟁. 하도 오래 끌다보니 이젠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조차 구별하기 힘들어진 길고 긴 싸움이다. 그래서인지 국제사회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얼마 전 유엔총회에 이어 아랍정상회담에선 이스라엘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했다며 규탄안을 채택했다. 반면 미국 하원은 정반대의 결의를 통과시켰다. 저마다 헷갈리는 것일까, 아니면 속셈들이 다른 것일까. 국제사회 생리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朴健榮(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