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에 비유한 시인은 김광균(金光均)이었다. 불그죽죽하고 누런 색상이 지폐같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많이 뒹굴어도 실제 가치는 없는 것이 임시정부 발행권같다는 발상이 다시 읽어봐도 신선하다. “저게 다 돈이라면….” 시(詩)는 서민들의 부질없는 상상과도 맞닿아 있다. 그런데 낙엽 중에는 지폐라고 하기엔 너무 큰 것들이 있다. 시내 가로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플라타너스 잎이 그렇다. 팔랑팔랑 지는 여느 낙엽과는 달리 후두둑 떨어지기 일쑤인 이 잎새 가운데는 식탁보만하게 큰 것도 많다. 흉물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플라타너스의 본모습인 걸 어쩌랴. 플라타너스라는 이름도 `넓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티스에서 유래했다.
 플라타너스의 우리말 이름은 버즘나무다. 나무껍질이 얼룩덜룩 벗겨진 모양새가 마치 버즘 잔뜩 핀 시골아이 얼굴같다 해서 그리 불리는 듯하다. 북한에서는 흑갈색 방울 모양으로 달리는 이 나무의 열매에 착안, 방울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가지'를 쓴 식물학자 이유미 박사는 통일 뒤 사물의 이름을 하나로 조정할 때 방울나무라는 예쁜 이름에 표를 던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버즘 핀 얼굴'이 `순박했던 지난 시절'을 상기시켜 주는 한 버즘나무도 나름대로 괜찮은 이름이지 싶기도 하다. 1년에 2m가량 쑥쑥 자라는 버즘나무는 공해물질을 빨아들여 분해하는 능력도 있다. 봄에 어린 잎에서 날리는 털이 인체에 해롭다는 문제만 해결하면 가로수로서는 썩 훌륭한 자질을 갖춘 셈이다.
 버즘나무 큰 잎새가 찬바람에 떨어져 뒹구는 이맘때면 서민들의 마음은 스산해지게 마련이다. 김장을 비롯해서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 하지만 궁색한 살림에 여력이 없으므로 한숨만 나온다. 경제가 휘청이고 실업자가 쏟아지는 올가을 버즘나무 낙엽에 서민의 시름은 유난히 깊다. 버즘나무는 가지가 무성하고 잎이 많아 낙엽지는 기간이 길다. 그러므로 마지막 잎새가 지고 나면 봄도 머지않은 법이다. 그 희망에나 기댈 수밖에. <楊勳道(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