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오후, 변두리 서민 아파트 주민들이 빈터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그때 걸핏하면 아내를 구타하는 한 사내와 이를 피해 도망가는 여인이 그들 앞을 달려간다. 그런데 이를 보는 사람들 표정이 사뭇 대조적이다. 여자들은 분노를, 남자들은 재미있어 못견디겠다는 모습들이다. 마침내 격분한 여자들은 폭력 남편을 집단구타하게 되고, 남자들이 이를 뜯어말리는 와중에 어느덧 남자 대 여자들의 패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한편 뭇매맞은 남자는 병원으로 후송도중 숨지고, 경찰이 여자들을 연행하려 하자 여자들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농성을 벌인다.’ 몇해 전 개봉돼 관객께나 모았던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 앞부분 내용이다. 분명 허구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을 것 같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다. 아마 이 영화를 본 숱한 여성들은 일종의 대리 만족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 법 하다. 그래서 더욱 여성관객이 몰렸는지도 모르지만.
 예부터 유난히 남성중심 사상이 짙게 깔려있는 탓일까, ‘매맞는 아내’ 이야기가 심심찮게 화제가 된다. 그만큼 폭력 남편이 적지않다는 뜻이리라. 실제로 최근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발표에 따르면 한국 여성 30% 가량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다. 30%라면 세명 중 한명에 가까운 것으로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여기엔 상습적으로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여인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심지어 폭력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하는 여인들도 있다.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같은 일은 비단 우리 사회만의 현상은 아닌 모양이다. 며칠 전 독일 각료회의가 폭력방지법 개정안을 승인했다는데 그 내용이 자못 눈길을 끈다. 즉 때리는 남편이 집을 나가야할 뿐 아니라, 남편이 집에 못들어가도 집세는 계속 물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대개 여자들이 못견뎌 집을 나가는 상황이고 보면, 어쩌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기야 아내와 자식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생각하는 뒤쳐진 사고부터 고쳐져야겠지만. <朴健榮(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