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가장 추운 지역 하면 이젠 으레 철원을 떠올린다. 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 자리는 양평의 몫이었다. 지난 81년 소한에 영하 32.4도를 기록한 이래 85년 영하 27.5도, 86년 영하 27.2도 등 양평은 한극(寒極)으로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양평이 추운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되곤 했다. 우선 지형이 계곡형 평야지대여서 밤에 복사냉각 현상이 심한데다가 74년 준공된 팔당댐으로 인해 남한강의 흐름이 막혀 쉽게 얼어붙고, 이 얼음이 복사냉각을 더욱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 일기예보에 철원 기온이 가장 첫머리에 나오듯, 당시에는 양평이 몇 도냐가 화제였다.
 재미있는 것은 `남한의 중강진'이 양평에서 철원으로 바뀐 까닭이다. 87년부터 양평보다 훨씬 북쪽인 철원지역에서도 기상관측이 시작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91년말 양평읍 외곽 벌판에 있던 양평기상관측소가 시내로 옮겨간 것이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남한강 칼바람을 직접 받는 백엽상에서 재던 기온과 시가지가 가까운 곳에서 측정되는 수은주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복사냉각은 여전하건만 양평의 기온은 가만히 앉아서 `상승'했고, `소주병이 얼어터지는 지역'이라느니 `추워서 못 살 지역'이라느니 하는 편견에서 자연스레 벗어나게 됐다. 자연현상인 추위마저도 이렇듯 체감하는 때와 장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단순한 이치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같은 추위라도 `한파'라고 할 때와 `동장군'이라고 부를 때의 어감은 미묘한 차이가 있는 듯하다. 한파 혹은 혹한이라고 하면 왠지 시베리아 삭풍이 곧 불어닥칠 것같다. 하지만 동장군은 위세를 떨치다가도 그 심술이 누그러지면 물러나는 `인간적인 체취'를 느끼게 해 준다. 난방 잘된 아파트에서 반팔 입고 사는 `철' 모르는 사람들이야 한파가 오든 동장군이 가든 그게 그것이겠지만, 강추위에 수도관, 보일러 얼어터져 계절을 혹독하게 체험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철든' 서민들은 동장군이 잠시 주춤해진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楊勳道(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