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통틀어 자신의 편지가 가장 널리 읽힌 인물은 아마 사도 바울(바울로)일 것이다. 그의 편지는 20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간 초장기 베스트셀러다. 서기(AD)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신약성서 정경(正經) 27편이 확정되었을 때 바울의 서신은 그 절반을 차지했다.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로마서)' `고린도 교회를 위해 쓴 첫째·둘째 편지(고린도전·후서)'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빌레몬서)' 등 그의 사신(私信)이 당당히 기독교의 경전 반열에까지 오른 것이다.
바울이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편지를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박해와 순교가 잇따르는 어려운 상황에서 신도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편지를 썼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수신인들 역시 정성을 다해 쓰여진 바울의 안부인사와 교리설명과 교훈과 권면을 읽고 또 읽었으리라 짐작된다. 단어 한마디, 글자 하나에 스며있는 깊은 의미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바울의 교리서신 옥중서신 목회서신을 읽고 또 읽는다.
원래 `편지'라는 글형식은 발신인과 수신인간에 독특한 감정의 장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뜻과 감정을 온전히 담아 전하고 싶은 발신자의 노력과 마지막 뉘앙스조차 더듬어 찾으려는 수신자의 노력이 마주치기 때문이다. 통신수단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이같은 편지의 맛과 멋을 완전히 대신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마주앉아 대화하는 것보다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지는 `한 글자의 무게가 곧 천금(千金)'이다.
드디어 남·북 우편물 교환이 이뤄졌다. 늦어도 오늘 내일 중으로 남과 북의 각각 300가정이 `50년 한과 눈물과 반가움'이 범벅된 편지를 전달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받은 편지에 대한 답장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내 혈육이 살아서 쓴 글씨'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편지는 수신자에게 경전 못지않은 소중한 보물일 터이다. <楊勳道(논설위원)>楊勳道(논설위원)>
편지
입력 2001-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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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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