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저 유명한 청산리전투의 주역이었다.
그들은 또한 30년대와 40년대 만주항일 유격전을 이끌었던 좌·우익 전사들이자 광복군의 핵심세력이었다.
나아가 그들은 광복후 태어난 국군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오늘날 육군사관학교의 설립이념을 떠받쳐 주는 기둥이 되었다.
그들은 바로 신흥무관학교의 졸업생들이다.
1911년 우리나라 최초의 체계적 독립군 양성기관으로 문을 열었고 일제치하는 물론 해방공간과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숱한 인재를 배출했던 신흥무관학교.
취재진은 이 학교의 터를 찾아 아홉굽이 양의 창자 같은 산길을 독립군이 되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걸었을 80년전 조선청년의 감동을 상상하며 넘었다.
통화시 합니하(通化市 哈泥河)를 아우른 광화촌(光華村)과 동승촌(東升村)사이의 비포장 샛길을 따라 남쪽으로 5리가량 걷자 한족(漢族) 20~30여호가 모여사는 외딴 마을(제7소조)이 이방인을 반겼다.
신흥무관학교가 자리잡았던 곳이다.
고려관자산(高麗館子山) 등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이 곳은 중앙에 남북 10리 가량되는 대평원이 펼쳐져있고 그 남쪽끝은 주변 옥수수밭보다 30m쯤 돋아난 언덕이 있다.
주변을 둘러본 연변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 姜龍權교수(55)는 『지난 92년만해도 원반형의 평원이었는데…』라며 최근 침하작용으로 남쪽 끝 3분의1 가량이 떨어져 나간 학교터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봤다.
두 부분으로 갈라진 이 곳은 드넓은 「합니하대평원」을 떠올릴 만큼 넓어보였으며 군사적으로도 영락없는 천혜의 요새라는 느낌을 준다.
적들의 동태를 10리밖 들판까지 한 눈에 포착할 수 있고 동·남·북 3면을 감싸고 흐르는 합니하는 천연 해자(垓字·옛날 적들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성곽바깥에 설치한 연못)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천혜의 지형 덕분에 마음놓고 항일투사를 키워낼 수 있었던 신흥무관학교는 구한말 대표적 독립운동단체였던 신민회 간부들에 의해 설립됐다.
신민회는 일제 침략으로 국권상실이 다가오자 만주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키로 하고 1910년부터 이미 이곳으로 이주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들은 이듬해 봄 한인자치기관인 경학사를 설치하고 이어 국내에서 넘어오는 청년들을 독립군 중견간부로 양성하기 위해 신흥강습소를 설치했다.
제1기 졸업생 배출과 함께 1913년 5월 교사 완공으로 학교터를 합니하로 옮긴 신흥무관학교는 학제로 4년제 본과를 비롯 장교반(6개월), 하사관반(3개월)을 두었다.
야간 비상훈련을 자주 실시해 언제든 완전무장을 꾸릴 수 있는 임전태세가 몸에 밴 재학생은 각개전투 훈련과 이 고지에서 저 고지로 옮겨다니며 가상 적을 상대로 펼치는 공격·방어전 등 군사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고등산술, 국어문법, 대한지리, 대한국사, 교육학, 윤리학, 경제학, 물리학, 화학, 박물학, 생리학 등 일반 교과목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이들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엄동설한에도 야간에 강을 건너는 훈련이나 통화현 70리 강행군, 빙상운동, 유도, 철봉 등 체육관련 교육을 엄격히 받았다.
이상룡(李相龍·임시정부 국무령)에 이어 여준(呂準), 이시영(李始榮·전 부통령)이 차례로 교장을 맡았고 교사로는 양규열(梁圭烈), 윤기섭(尹琦燮·2대 국회의원·납북), 이관직(李觀稙) 등 교육·군사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또 김창환(金昌煥·통의부 사령장), 지청천(池靑天·광복군 총사령관), 이범석(李範奭·전 국무총리), 신팔균(申八均·통의부 사령장), 김경천(金擎天·백마탄 김일성), 박두희(朴斗熙), 김승균, 양승무 등 일본이나 중국에서 정규 군사교육을 받은 청년들도 가담했다.
그외에 변영태(卞榮泰·전 총리), 이광(李光·전 체신장관), 김훈(金勳·전 상공장관), 오광선(吳光鮮·육군소장 예편), 김학규(金學奎·광복군 사령부 참모), 이규봉(초대 신흥대학장), 김범린(전 문교장관) 등 열혈청년들이 교육에 혼혈을 쏟았다.
날로 교세를 신장하던 신흥무관학교는 3·1운동을 기점으로 절정기를 맞게 된다.
국내에서 애국 청년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재학생 수가 무려 6백명을 넘어 유하현 고산자에 분교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고산자는 과거 중국인들이 큰 배라 부르던 곳으로 현재 행정 주소는 유하현 전승향이다.
마을 노인들은 이 곳에 조선독립군 군관학교가 운영돼 한복을 걸친 청·장년이 밤낮으로 들락날락했다는 얘기를 웃어른에게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50년대 들어서면서 교사의 기초로 쓰인 돌을 하나 둘 빼내 집이나 움막 짓는데 써서 지금은 완전히 변해버린 학교터에 건물이 있던 자리가 좀 도드라질 뿐 다른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신흥무관학교는
[만주항일투쟁 현장답사-7] 첫 체계적 독립군 양성기관 『신흥무관학교』
입력 1999-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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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2-1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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