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강화 산성(山城)중 훼손이 가장 심한 서문 성곽 주변. 성곽의 상당 부분이 흙더미에 묻혀 있고, 일부 주민들이 작물을 심어 역사의 고장 강화의 이미지를 흐려놓고 있다.
 역사와 인문·자연 문화재의 보고(寶庫)인 강화가 몸살을 앓고 있다. 5천
년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각종 유적·유물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개펄 등
이 당국의 무관심과 무문별한 개발로 훼손·오염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이
다. 강화인삼 등 특산물의 명성도 점차 퇴색하는가 하면, 각종 규제에 묶
인 주민들의 불만도 높아가고 있다. 이같은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법
을 모색하는 시리즈(13회)를 싣는다.〈편집자 註〉

 1부:버려지는 귀중한 문화재들(작은 컷-상·중·하 중 상편)
 주민 윤영현(65·선원면)씨는 강화외성(外城)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민
다. 어렸을 때 바라보던 돈대(墩臺)의 모습은 죄다 사라지고 콘크리트로 뒤
덮은 건물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돈대를 연결하기 위해 쌓은 것이
강화외성인데 돈대의 돌을 빼다 제방을 쌓거나 주차장을 만들어 놓고선 무
슨 유적지 타령이냐”며 핏대를 올린다.
 강화외성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적북돈(강화읍 대산리)에서 지돈(길상
면 초지리)까지 총 23㎞ 길이에 축조된 것. 외성을 포함해 강화도엔 용진
진, 화도돈대, 광성보, 용두돈대 등 조선(효종~숙종)시대에 설치한 포대가
54개에 달하지만 제대로 관리되는 곳은 광성보와 용두돈대 등 15개 정도
다. 〈관련기사 3면〉
 이중 화도돈대(선원면 연리)의 경우 지난 2월 강화군이 돈대의 복원을 위
해 5천500만원을 들여 사유지를 매입했지만 지금까지 복원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화도돈대 주위엔 물탱크와 닭장 등 가축을 사육하는 시설이 널
려 있어 도저히 역사 유적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화도돈대 인근 주민들은 “예전엔 이 곳에 큰 소나무와 돌다리가 있었는
데 모두 파헤쳐 없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윤씨 말에서 알 수 있듯 현재 강화읍에서 광성보까지 둘러 쌓았던 강화외
성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성벽이 있던 자리엔 지난해 5월 부분 개
통한 해안도로와 함께 주차장(9곳)과 휴게실이 들어서 관광객들을 맞고 있
는 실정. 성의 석축은 거의 없어진 상태며, 석렬은 간신히 형태만 유지한
채 잡목에 둘러싸여 있다.
 관광지도에 표시된 선두보돈대는 흔적마저 사라진지 오래다. 무성한 잡목
에 뒤덮인데다 석축마저 무너져 내려 돌더미만 쌓여 있다. 적북돈의 경우
인공시설로 인해 원형을 추정할 수 없는 상태다. 이처럼 형태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돈대가 절반이 넘는다.
 형체가 남아 있는 강화내성의 사정도 마찬가지. 강화성의 남문(南門)과
연결된 남산으로 10여m 올라가면 성벽이 흙과 잡목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산기슭엔 쓰러져 가는 움막집 마당에 산업폐기물과 생활쓰레기가 잔뜩 쌓
여 있다. 강화군이 지난해 남문에서 서문과 동문을 연결하는 '성 밟기' 행
사를 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불은면 덕성리의 광성보는 비교적 편의시설을 잘 갖춘 편이지만 속을 들
여다보면 얼마나 관리가 허술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시멘트로 보수한 처마
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루 옆문짝은 경첩이 떨어져 너덜대
고 있고, 문루(門樓)와 담장 사이엔 도시락과 음료수 병들이 널려 있다.
 남문에서 1㎞ 가량 떨어진 강화읍 관청리의 고려궁지(宮址)는 더욱 가관
이다. 발굴하다가 만 뜰에는 폐비닐이 덮여있고, 발굴중에 나온 기와조각들
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관광객들은 “안내판 마저 없으면 궁궐터 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라
며 혀를 차고 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