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이민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하와이를 선택했지요. 이 곳은 타 민족에 대한 차별도 심하지 않고, 한인들의 위상도 높아 이민자들이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어요.”
지난 99년 부인(39)과 딸아이(8)를 데리고 하와이로 건너가 이민 생활 3년째를 맞고 있는 권은덕(39)씨. 그는 현재 호놀룰루 시내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며 하와이주립대학교 정치학과 박사학위 과정에 재학중이다. 그는 전공학문에 대한 연구 열정과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을 인정받아 올해부터 이 대학 시간강사로 학부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권씨가 이민을 택한 것은 학문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평소 강단에 서고 싶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인생의 대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에 취직해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으며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가 하와이 이민을 결심하자 가족과 친지 등 주위의 만류도 컸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다잡은 그의 결심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이 IMF를 겪게된 정치적 배경'을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중인 그는 “제가 굳이 미국을 택한 건 학연에 따라 능력을 평가받고, 스승이나 출신학교에 따라 강단에 서는 길이 열리는 한국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도 한 이유”라고 털어놨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미술수업 시간에 그린 그림을 집으로 가져 왔어요. 그런데 태극마크가 그려진 비행기 아래서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놓고 영어로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적어 놓았지 않았겠습니까? 딸 아이에게 몹쓸짓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권씨는 “딸아이가 영어도 잘 하고 표정이 밝은 것 같아 미국사회에 잘 적응하는 줄 알았는데 가슴이 무척 아팠다”며 “성장기를 거치며 겪게될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등은 이민을 결정한 내가 풀어주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라고 씁쓸해 했다.
1902년 12월22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102명의 한인을 태운 배가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로 향한지 100년. 한국 이민의 역사도 100년이 흐른 셈이지만 아직도 한국 내에서 미국 이민의 열풍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인구조사국이 발표한 2002년 아시아인구 통계자료를 보면 이같은 한국의 이민열풍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자료를 보면 중국계가 273만4천명으로 전체의 약 23%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필리핀계(236만4천명), 인도계(189만9천명)에 이어 한국계가 122만8천명을 차지했다. 그러나 불법체류 등을 통해 미국에 체류 중인 한국인 수를 합하면 미국 내 한인사회의 규모는 최소 130만명에서 최대 2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와이는 한국인들이 이민을 선호하는 미국의 도시 중 하나다. 한인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편하기 때문. 그러나 하와이엔 로스엔젤레스나 뉴욕과는 달리 코리안타운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민 초기와 같이 인종 차별에 맞서 세력을 집단화하기 위해 거주촌을 이룬 것과는 달리 지금은 한인들의 위상이 높아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하와이 한인들은 전체인구 110만명 중 3%(약 4만여명)에 불과하지만 가장 성공한 소수민족으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코리안타운을 중심으로 고립된 생활을 고집할 경우 이민사회에서 경쟁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와이 한인들이 미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하와이대엔 500여명의 한국인 유학생과 한인교포들의 자녀가 재학중이어서 교육환경도 이질감이 덜하다고 한다.
“50년대 이전 하와이 이민자들은 대부분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이민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나 교수 등 한국에서 전문 직종에 종사했던 60년대 이후 이민세대는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인사회를 일궈내고 있습니다.”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이덕희(62·여)부회장의 얘기다. 그는 “이민의 동기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첫 하와이 이민자를 포함해 한국전쟁 직후 미군과 결혼한 여성(평화부인), 전쟁고아 세대에 이르기까지 이민의 주된 동기는 대부분 '굶주림으로부터의 도피'였다는 게 이 부회장의 설명.
그러나 이민 100년이 지난 지금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이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초기 이민자들의 이상과는 이민의 동기가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회 해외이주·이민 및 제15회 해외유학박람회장에선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출입문 주변에서 기다리던 이민 희망자들이 몰려들었다. 300여개 이민알선업체 부스가 마련된 전시장은 순식간에 발디딜 틈도 없이 북새통을 이뤘다. 행사 관계자는 “이민 희망자 중 상당수는 열악한 한국의 교육환경 때문에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며 “지난 3월과 8월
[하와이 이민 100년 현장을 가다] 계속되는 이민열풍과 하와이
입력 2002-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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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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