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을 시작하며
정치인들이 뭔가 석연찮은 뒷거래를 성사시키는 단골 장소, 그들이 잔디밭을 거닐며 적당한 농담속에 주고받은 밀담에 의해 정치판이 새로 짜여지기도 하고 엉킨 실타래 같았던 정국이 거짓말처럼 풀리기도 한다.
국민을 웃고 울리는 국가현안들이 골프장에서 결정되기 일쑤니 '골프공화국'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대한민국이 골프공화국이라면 수도권은 '골프 특별구'. 월드컵 열기로 축구가 인기라지만 전국의 잔디구장을 다 합해 놓은 수에 버금가는 골프장이 이곳에 밀집돼 있다. 집 한칸 올릴 때 그리도 까다롭던 규제들은 다 어디로 가고 교통좋고 산세좋은 곳마다 수십만평 골프장은 잘도 들어선다.
왜 일까? 그저 수많은 레저·스포츠의 하나일 뿐인 골프가 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고,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골프장들이 툭하면 말썽꾸러기 불·탈법의 온상으로 지목받는 것일까.
본보는 창간 42주년 특별기획 '말많은 골프, 탈많은 골프장'을 통해 이 궁금증의 해답을 얻어내고자 한다.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골프와 막강한 배경과 파워를 바탕으로 온갖 비난속에서도 꿋꿋이 '마이 웨이'를 외쳐온 골프장들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골프가 진정한 대중 스포츠로 국민 품에 안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본다.
몇 년전 박세리가 맨발 투혼을 발휘하며 US여자오픈을 제패하는 장면은 IMF 국가위기를 극복해 내자는 CF로 만들어질 정도로 골프의 '골'자도 모르는 국민들에게까지 진한 환희와 감동을 선물했다. 박세리의 우승은 곧바로 골프 열풍으로 이어져 청소년 골퍼 지망생을 양산해 냈고 연습장을 인파로 북적거리게 하며 '골프대중화'의 촉매 역할을 해냈다. 어느새 골프인구 300만 시대를 맞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가 축구나 야구처럼, 백번을 양보해 수상레포츠나 스키처럼 '대중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골프 예찬론에 빠진 주말골퍼들 조차 “돈은 좀 들지만”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 골프라는 운동은 결코 '돈 좀 드는' 정도의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우선 입이 쩍 벌어지는 골프 회원권이 그렇다. 경제위기속에 한때 주춤했던 회원권 가격은 이미 IMF 이전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어지간한 아파트 한 채 값인 1억~2억원은 기본이고 용인 레이크사이드의 경우 무려 5억3천만원으로 '황제 골프장'의 반열에 올랐다.
회원권 상승 금액도 상상을 초월한다. 용인 화산은 6개월 사이 무려 1억400만원이 올라 재주있다는 아파트 투기꾼들을 무색케 했다.
주위의 권유에 못이긴 척, 골프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첩첩산중의 금전적 장애를 넘어야 한다. 드라이버 하나에 100만원을 호가하는 판이니 풀세트 200만~300만원이면 '검소한' 골퍼에 속한다. 금 장식이 박힌 일제 '혼마 5스타' 아이언 세트는 2천만~3천만원에 달해 '꿈의 골프채'로 손색이 없다.
'있는 사람'들의 사치 경연장이 되다보니 바람막이, 비옷은 50만~60만원이 예사고 골프화 한켤레, 조끼 한장도 20만~30만원은 돼야 '괜찮은' 편에 속한다. '없는 집 자식' 대학생이 시간당 2천500원짜리 파트타임에 진땀을 흘리는 사이 이 시대의 귀족들이 라운딩 도중 연못에 빠뜨린 공하나가 1만원을 넘는다는 사실을 아는 서민은 또 몇이나 될까.
◆ 왜 귀족 스포츠인가
회사의 지원으로 접대를 해야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한국에서 어지간한 월급쟁이(직위 고하와는 상관없이)들이 골프를 '즐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운좋게 쓰던 골프채를 얻거나 중고 골프채로 큰 부담없이 장비를 갖췄다 하더라도 주말에 수도권의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한번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0만~30만원의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금액의 회원권 가격과 장비, 수십만원에 달하는 골프요금, 여기에 골프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레슨비·연습장 비용) 비용까지 포함한다면 골프로 여가를 즐기는 계층은 지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다.
▲골프장 회원권
군부대 골프장과 연회비제로 운영되는 남부·안양베네스트를 제외하고 현재 경기도내에서 운영중인 회원제 골프장은 모두 68곳.
지난달 초 국세청이 고시한 회원권 기준시가 상위 10위가 모두 경기도내에 위치해 있다. 용인의 레이크사이드가 5억3천만원으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광주 이스트밸리가 4억9천500만원으로 2위, 남양주 비전힐스가 4억2천800만원으로 3위에 올라있다. 용인 화산(4억1천400만원), 안성 파인크리크(4억500만원) 등도 4억원대 골프장으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수원의 30평형대 아파트가 1억5천만~1억8천만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골프 회원권 하나가 웬만한 서민 아파트 2~3채 값을 웃돈다는 계산이 나온다.
회원권 상승금액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2월 3억1천만원에 고시됐던 화산 골프장 회원권은 6개월새
[말많은 골프 탈많은 골프장] '가진者의 사치 경연장' 그곳은…
입력 2002-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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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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