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

터키의 국부(國富) 아타튀르크가 온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영웅이라면, 프로축구 스타들은 전 터키인들을 울리고 웃기는 또하나의 국민적 영웅들이다. 터키에서 축구는 모국어인 터키어보다 감정표현과 의사소통력이 더 강하다. 축구에 관한 한 남녀노소 모두가 전문가들이고, 축구에 몰입하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스탄불에서 담담하고 지적인 모습으로 톱카프 궁전을 안내했던 현지 가이드 미스 이램은 시종 터키에 대해 꼬치꼬치 궁금한 점이 많은 취재팀에게 느닷없이 '터키인들이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는 것 두가지가 뭐게?'하며 수수께끼를 냈다. 우정? 종교? 마누라?…. 며칠간 터키에 대해 주워들은 정보들을 떠올려가며 답을 대봤지만 그 첫번째 정답은 전혀 예기치 못하게도 '지지 정당'이란다. 선거한번 치를 때마다 생기기도 잘하고 없어지기도 잘하는 우리나라의 정당, 철새들이 판을 치는 우리 정치판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지만 터키인들은 지지 정당을 바꾸는 사람을 '못 믿을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설명이다. 우리의 싸구려 정치판에 대한 부끄럼을 감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취재팀에게 가이드(고양이, 고교생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마흔세살의 이 이혼녀는 한국 남자들이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며 '한국 여자들은 남자를 늙지 않게 하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두번째 정답은 꼭 맞춰보라며 힌트를 줬다. '월드컵, 대~한민국(발음은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그 흥겨운 음정과 박자는 그대로 흉내냈다)'. 아하!! 축구…. 그런데 축구가 뭐?

터키인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축구팀 하나씩은 갖고 있다. 축구 시즌이 되면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축구시합에 맞춰 아예 일상 생활의 스케줄을 조정할 정도로 축구에 흠뻑 빠져있다. 스타디움에서 그들의 모습은 가히 광적이다. 열성팬들 사이에 유혈충돌이 벌어지기 일쑤다 보니 아예 팀에 따라 경기장에 입장하는 문을 달리한다. 응원 팀이 극적인 골을 넣으면 권총을 빼들어 허공에 축포를 쏘기도 하고 졸전끝에 패하기라도 하면 선수들의 숙소에까지 몰려가 난동을 부리는 통에 경찰이 경비를 서는 일도 허다하다. 축구에 대한 사랑, 자기 팀에 대한 애정이 워낙 깊어 나타나는 현상이니만큼 그들은 절대로 응원하는 팀을 바꾸지 않는다.

인구 5천700여만명의 터키는 프로축구팀만 200개가 넘고 등록선수가 4천700명에 이를 정도로 축구가 활성화돼 있다. 슈퍼리그로 불리는 1부리그는 18개팀이지만 3부로 나뉘어 있는 리그가 거의 매일 열리기 때문에 전국민이 축구와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터키의 주요 일간지들은 마지막 두면은 으레 축구뉴스로 채운다. 축구소식이 없으면 신문이 팔리지 않을 정도다. 가족간에도 좋아하는 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응원 중 옥신각신하는 일도 많고 유명팀 경기뒤에는 차량의 물결로 교통체증이 빚어지는 일도 비일비재다.

터키인들은 왜 축구에 미치는 것일까?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기마 유목민족인 터키인들에게 축구는 과거 말을 달리며 땅을 넓혀온 민족성을 살려내기에 적합한 운동이다. 터키인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은 민족 본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좋아하는 팀만 알아도 그 사람의 면면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다. 전통의 명문 갈라타사라이는 도시지식인이나 사업자, 교육받은 부유층 사이에 팬이 많다. 페네르바흐체는 가장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데 주로 중산층 이하의 계층과 민족주의 노선의 정치가, 군인들이 좋아한다. 베식타쉬는 중산층 전문직과 공무원, 경찰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 형제국에서 온 튀르크 전사 '리용'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은 단연 이을용이다. 태극전사 이을용이 월드컵 직후 터키의 트라브존 스포르구단으로 이적이 이뤄졌을때 터키 현지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워낙 축구열기가 뜨거운 나라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시시콜콜한 축구단신까지 다 꿰차고 있지만 이을용의 터키 입성은 '형제국'에서 날아온 축구선수, 터키리그 최초의 동양인 선수라는 점에서 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게다가 이을용이 누구인가? 터키인들은 자기나라와의 3·4위 전에서 이을용이 쏘아올린 그림같은 왼발 프리킥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터키에서 이을용은 '리용'으로 불린다. 다른 뜻은 없고 단지 어려운 발음을 부르기 쉽게 간소화한 애칭. 이을용의 소속팀 트라브존스포르가 있는 트라브존은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무려 24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비행기로도 1시간 40분에서 2시간은 잡아야 한다. 취재팀이 방문했을 때 마침 터키 국영TV와 민영 스타TV가 잇따라 이을용에게 인터뷰 공세를 취하고 있어 그의 인기를 짐작케 했다. 두 방송국의 취재진은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며 서로 먼저 인터뷰를 하겠다고 본보 취재팀이 보는 앞에서 티격태격 다투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