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돌아왔다. 근대화 과정에서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던 우리의 '마을'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부활은 우선 이름에서 뚜렷하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은 신나무실, 탑마을, 효자촌, 벽적골, 별빛마을 등 저마다 색다르고 토속적인 이름을 자랑스레 달고 있다. 일제시대 '부락'으로 불리던 시골 마을들도 오래 동안 잊고 지내던 이름을 되찾아내고 먼지를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여기에 녹색마을, 역사마을, 농촌체험마을, 문화마을, 정보화마을 등 정부 부처들도 '마을 만들기'에 한창이다. YMCA와 YWCA를 비롯한 전국 조직의 시민단체들과 지역 자생의 각종 환경·생활·여성단체들, 아파트 공동체 역시 다른 동네보다 살기 좋은 우리 마을을 만들자고 힘을 모으고 있다.

민·관 협력으로 진행중인 '아젠다21'에서도 지속가능한 개발의 실천단위가 마을이라는 각성 아래 전국적으로 '마을의제'를 모색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가히 '지금은 마을시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옛날의 마을이 농업 등 생업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였다면 21세기 디지털시대의 마을은 다르다. 파편화되고 삭막한 삶과 환경을 따스하고 풍요롭게 가꾸는 여정으로서의 마을이다. 지역에 따라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담장을 허물고 벽화를 그려가는 곳도 있고 환경과 생태, 마을역사, 문화 등을 통해 새롭게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에 '마을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97년께.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지 5년 정도 지난 시점부터다. '마을만들기'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김찬호(연세대 강사·사회학)박사는 “지역공간을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디자인해가는 일본의 '마치즈쿠리'를 소개하면서 이를 마을만들기라고 붙였다”며 “주민들이 자기 삶의 공간을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전유하는 의식과 자세를 통해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보다 풍요롭고 쾌적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마을만들기를 선도했을 뿐 아니라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는 곳은 대구시 중구 삼덕동이다. 지난 96년 녹색도시가꾸기 사업에 부응해 서구청과 경북대 병원이 담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가로공원을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줬다. 이듬해인 97년에는 유료공원이던 경상감영공원이 담장을 허물어 개방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어 98년에는 대구YMCA의 한 회원이 자신의 집 담장을 허물어 정원을 동네의 휴식공간으로 개방했다. 개인의 담장허물기는 이 운동의 기폭제가 돼 이후 매년 수십 가구 씩 담장을 허물고 정원가꾸기에 나서고 있다. 올해는 시의 지원예산(민간건물 300만원)이 부족할 정도이고 서울의 그린파킹, 전남 순천 등지로 퍼지고 있다.

요즘은 단순히 담장만 허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주택들은 넓은 마당을 작은 공연장으로 꾸미고 녹색가게, 방과후공부방 등을 만드는 등 주민들의 의식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구의 '담장허물기'는 전형적인 민-관 협력사업으로 시작돼 4년 만에 범시민운동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최근들어 버스투어 관광객이 올 정도로 '담장 허물기'를 통해 전국의 명소가 되고 있는 대구. 담장을 허문 시민들은 사회통념과는 달리 도둑 걱정과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대신 “담장을 허물고 창을 여니 세상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