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금난으로 매각이 진행되면서 입주업체의 절반이 떠나버린 용인시 소재 한 벤처단지의 텅 빈 로비 모습.
첨단산업의 핵심인 벤처기업들이 무더기로 몰락할 위기에 몰리고 있다.
 
15일 경기·인천지역 벤처업계에 따르면 심각한 자금난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다 고급인력들의 취업기피로 인력난마저 심화되고, 애써 개발한 기술마저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부도를 맞거나 휴업에 들어가는 업체들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벤처기업들의 자금난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진단이다. 담보가 부족해 금융권에서는 외면받고 민간투자는 얼어붙어 자금줄이 꽉 막혀있는 데다가, 단기성 대출의 상환까지 밀려들면서 불황에 빠진 벤처업체들의 목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탄탄한 자금력과 매출을 자랑하던 화성의 반도체 장비업체 H사와 수원의 휴대폰 부품업체 A사가 최근 자금난으로 부도를 맞았고, 멀티미디어기기를 생산하던 인천 남동공단의 S사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폐업신고를 냈다. 8개 바이오벤처가 입주한 용인의 B사는 자금난으로 매각이 진행되고 있으며 무선통신기기 개발업체인 화성의 T사와 수원의 E사 등은 인력을 대폭 감원하고 사실상 개점휴업에 들어간 상태다.
 
게다가 높은 청년실업률에도 불구하고 벤처에 대한 취업기피가 확산되고, 애써 키운 고급인력들마저 대기업으로 줄줄이 옮겨가면서 벤처들은 연구인력조차 구하지 못해 애간장이 타들어가고 있다.
 
디지털 음향기기를 생산하는 수원의 P사 대표는 “올들어 연구개발 핵심인력 3명이 대기업으로 빠져나가 연구개발에 큰 차질을 빚었다”며 “대기업 못지 않은 대우를 제시해도 벤처라는 이유로 유능한 인재를 확보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한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여기에 벤처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의 대부분이 투자자를 찾지 못해 고스란히 사장되거나 헐값에 중국 등 경쟁국으로 팔려가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어, 벤처의 '뿌리'나 다름없는 기술개발 의욕마저 급격히 얼어붙고 있는 실정이다.

“벤처가 무슨 죄인입니까. 자금줄은 꽁꽁 묶어놓고 빌려간 돈은 갚으라고 하면, 요즘같은 불황에 다 망하라는 것 아닙니까.”

요즘 벤처기업 대표들은 하루하루가 지옥같다. 기술개발이나 제품생산은 남의 일이고, 매일 돈 얻으러 다니는게 '본업'이 되어 버렸다. 자금난에 쫓겨 직원들을 내보내고 싼 사무실을 찾아 전전하는 사이, 몇년간 공들였던 회사는 볼품없는 껍데기가 되거나 한순간에 도산해 버리기 일쑤다.

휴대폰 부품을 생산하는 수원의 B사는 이런 대표적인 사례. 한때 100억원대의 매출을 자랑하던 이 회사는 올들어 치열한 경쟁으로 매출이 줄어들면서 자금줄이 꽉 막혀 버렸다. 금융권에서는 더이상 담보가 없고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금지원을 거절했고, 이미 대출받은 자금의 상환기일까지 닥쳐 분기마다 1억원이 넘는 상환금이 밀려들자 채 반년을 버티지 못하고 부도를 맞고 말았다.

음성인식 통신시스템을 생산하는 수원의 E정보통신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불황으로 매출이 줄어들면서 긴급 운영자금이 필요했지만, 회사 임원들이 금융권과 제2금융권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녀도 담보물 없이 기술만 재산인 벤처기업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결국 기술개발이나 제품생산은 고사하고 밀려드는 대출상환금과 입주한 20여평 사무실의 관리비조차 내기 어려운 처지로 전락해, 같은 건물내 열평이 조금 넘는 초라한 사무실로 옮겨가야 했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회사가 쓰러지고 직원들을 내보내는 것 보다도, 금융권을 돌아다니며 한결같이 받았던 멸시가 더 가슴을 찢어지게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인천에서는 남동공단에서 멀티미디어기기를 생산하던 중견기업 S사가 경영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은 것을 비롯해 최근에만 4개의 벤처기업이 줄줄이 폐업신고를 했다. 지금 소위 잘나간다는 몇몇 중견벤처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벤처들이 이들과 비슷한 처지이거나 곧 이런 처지로 몰릴 위기까지 와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아무리 정책자금을 편성해 배정해도 보증기관이나 은행들은 담보물 없이는 돈을 내어주려 하지 않는데다가, 최근 금융계가 부실로 몸살을 앓으면서 '돈없고 백없는' 벤처들은 지원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게다가 민간차원의 벤처투자는 이미 2001년 이후 벤처업계의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사실상 시장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때문에 벤처기업 대표들은 자금을 얻으러 다니다가 지쳐 눈물을 머금고 직원들을 내보내거나 아예 회사를 M&A시장에 내놓고 개점휴업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 2000년과 2001년을 전후해 벤처기업들에 배정됐던 각종 지원자금까지 잇따라 상환이 도래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자금난은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실제로 경기도내 중소·벤처기업들이 경기도로부터 받은 정책자금 중 올해 갚아야 할 상환금만 566억여원이었고, 내년에는 상환금이 6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또 많은 벤처기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