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막집에 사는 아이들. 나는 이 아이들과 놀면서 집에 있는 다 큰 내 아이들을 생각했다. 너무 풍족하고 안락하게 키우는 것도 죄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녁에는 멀리 내 아이들에게 보내는 엽서를 썼다.
■알치(Alchi). 사막트레킹. 천막집 가기. 알치곰빠.

-천막집 큰 아이 바네사.

일어나자마자 마을 앞 가게에서 아이들 숫자만큼 비스킷을 사고 스쿨펜과 머리핀도 챙기고 마지막으로 아껴놓은 만화가 그려진 손목시계에다 알치의 시간을 맞추었다. 오늘 천막집에 가서 아이들과 놀 생각에 간밤엔 잠도 설쳤는데, 나는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에 아이들과 재회할 기대감으로 부지런히 사막을 걷고 있었다. 민들레 홀씨 같은 사막에 피는 가시꽃 씨앗이 부푸러기가 되어 하늘에 떠가고 눈앞에선 벌써 몇 마리 째 도마뱀이 꼬리를 감추고 달아났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 있어 어제에 비하면 한결 걸음이 가볍다. 이른 시간이라 아이들이 자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지만 막상 천막집이 가까워지자 걱정은 해결되었다. 오늘도 아래 샘에서 물을 길러 나온 아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제 키에 비해 매우 무거운 물통을 들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그들은 물을 길러 저 먼 샘까지 내려갔던 것인데 나를 보자 몹시 반가워하는 눈치다. 그런데 한 손에는 물통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두 아이 모두 어제 하나씩 나누어 준 컬러펜을 무슨 보물처럼 들고 있질 않은가? 물통을 언덕까지 들어다주고 천막집으로 따라가니 아이엄마는 여전히 맨바닥에서 자고 있다. 천막 안이라 해도 변변한 이불은 물론 세간 하나 없어서 저 많은 식구들이 어떻게 먹고 자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가난하다고 말하기엔 지독하게도 가진 게 없는 집이었다.
 
어제 울음을 달래주었던 아이가 나를 보자 눈을 비비며 천막 밖으로 기어 나왔다. 나도 아이와 재회하는 게 반갑고 기뻤다. 우르르 네 명의 아이들을 번갈아 안아주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니 막내는 그걸 받아 들고 안으로 기어가 제 엄마를 깨우며 좋아 어쩔 줄 모른다. 큰 아이에게 손목시계를 채워 주었을 땐 믿기지 않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천막 밖에서 작은아이와 놀고 있을 때 멀리서 다음 마을로 가는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들 모두 내 아이라고 했더니 재밌다는 듯 박장대소를 한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걸 보고 그들은 매우 신기해했다. 그러나 또 나는 그들과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일 새벽이면 알치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헤어지는 게 슬프고 가슴 아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내 나라말로 '다시 또 올게'를 연발하고 있었다. 내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내 눈빛에서 그들은 마지막이 될 작별의 시간을 충분히 예감하고 읽었으리라.
 
아이들과 놀다가 일어서려는데 천막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바네사! 바네사!”
 
네 아이 중 큰아이가 천막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때서야 어린 동생과 엄마를 돕는 큰 아이 이름이 '바네사'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물어도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제 이름조차 답하지 못했을 착한 큰아이 이름은 바로 '바네사'였다. 같은 이름을 가진 누구는 이름을 날리며 화려하게 살고 또 다른 바네사는 천막집에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고 있었다. 친구도, 장난감도, 그 무엇도 가진 게 없어서 쓸쓸하고 외로울 것 같으나 아이들의 웃음을 보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가진 게 없다 하더라도 이곳 천막아이들은 그래도 도회지 가난한 떠돌이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주위에는 거대한 산들이 있고 천막 안에는 엄마가 있고 낮에는 질 좋은 햇살이 쏟아지고….
 
-순정한 라다키들.
 
마을을 걷다보면 이곳 원주민 라다키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어디서든 여행객들이 건네는 '줄레!'라는 말 한마디에도 그들은 함박웃음을 보여준다. 특히 노인들은 연륜이 주는 푸근함 때문인지 말을 걸어보면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 하는 말이나 내가 그들에게 하는 말은 방언이나 다름없어서 해독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있으나 사람과 사이에는 언어를 뛰어넘는 마음의 교감이라는 게 있어 가끔은 말보다 더 뭉클한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여행은 언어를 뛰어넘지 않고서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마을을 돌 때 수차에 보릿가루를 타주며 먹어보라고 내미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서 나는 표현할 수 없는 온기를 느끼곤 했었다.
 
하루종일 더운 사막을 오가며 당나귀를 앞세워 물을 기르는 청년에게 동그란 오프너 하나를 주었는데 그걸 장난감이라 생각했는지 그는 연거푸 고개를 갸웃거리며 용도를 궁금해했다. 한참 후 병 따는 시늉을 하며 오프너라고 설명해 주었더니 머쓱해하며 매우 수줍어했다. 어느 날 아프리카의 부시맨이 문명의 상징인 빈 콜라병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를 궁금해하고 흥미로워했듯 청년도 그와 흡사한 호기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흙빛강물
 
땅보다 진한 땅빛, 흙보다 진한 흙빛. 그것이 인더스 강물 색깔이다. 알치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만난 것은 알치곰빠와 황량한 절벽아래 굽이쳐 흘러가는 인더스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