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만큼 당시 우리나라의 많은 유학생과 선각자들이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정착했다. 그러나 조국과 동포들이 식민지 억압의 고통속에 시달리는 것을 잊을 수 없기에 배움의 길은 결코 쉽고 편한 것이 아니었다.
2·8독립선언은 바로 이러한 유학생들의 고뇌가 쌓여 표출된 것이다.
1910년 한일합방이 이뤄진뒤 유학생들로 이뤄진 단체들이 조직된다. 이들은 현재 향우회의 모습처럼 삼남친목회, 호남다화회, 황평친목회, 영남구락부, 삼포구락부 등 지역별 조직의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곧 학우회로 통합되면서 재일 한인들의 반일투쟁 중심단체로 떠오르게 된다.
회보와 강연회 등으로 독립의지를 높여나간 이들은 1919년 1월 6일 최팔용 등을 실행위원으로 선임한뒤 독립선언서를 작성, 이를 각계에 알리기로 하고 조선청년독립단을 새로 조직한다.
마침내 1919년 2월8일 오전 10시. 독립선언서와 결의문, 민족대회소집청원서를 일본내 각국 대사관과 언론사 등에 보낸뒤 오후 2시 도쿄 한국YMCA회관에서 유학생대회를 열었다. 학생들은 선언문에서 일제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최팔용 등 60여명이 일본경찰에 체포되고 나머지 유학생들 수십명이 2월12일 히비야공원에서 만세시위를 펼쳤다. 도쿄 한복판에서 열린 2월의 의거는 곧 3·1만세운동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현재 도쿄 재일본한국YMCA회관 입구에는 2·8독립선언기념비가 서 있다. 2·8선언 63년 뒤인 1982년 재일본 대한민국청년회 및 대한민국학생회 등 민단계 청년단체에 의해 건립됐다. 받침대까지 약 2m가 채 안되는 크기지만 백색의 단순한 구조는 매우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일본 왕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쿄역호텔은 일본내 항일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양근환(1894~~1950) 의사의 의거가 이뤄진 곳이다.
황해도 연백 출신의 양 의사는 1919년 9월 도일, 와세대대학 정치경제과에 입학한다. 2년뒤 양 의사는 대표적 친일단체인 국민협회회장 민원식이 도쿄로 건너와 참정권 운동을 펼친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민원식의 처단을 결심한 양 의사는 1921년 2월16일 정오께 민원식이 머물고 있는 도쿄역호텔 214호실로 찾아간다. 유학생 동우회원의 이름으로 면회에 성공한 양 의사는 환영행사계획을 논의하며 민원식을 안심시킨 뒤 “당신은 우리나라를 배반한 자이다”라고 외치며 품속에 감추었던 칼로 민원식을 찔러 즉사시켰다.
양 의사는 2월24일 나가사키에서 상하이(上海)로 가는 야하타마루에 승선하려다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고 1933년 2월 출옥했다.
양 의사의 의거가 항일의 시작을 알렸다며 이른바 '박열사건'은 일본 전역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박열은 3·1운동에 가담한 사실 때문에 퇴학당하고 같은해 10월 도일, 세이소쿠영어학교를 다녔다. 1921년 민족적 사회주의 단체인 흑도회를 창립했고 이와함께 불령사(不逞社)를 조직, 일왕 폭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1923년 9월1일 간도대지진이 발생하자 조선인 대학살이 이어졌고 이에 따른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일본은 '대역사건'을 조작하게 됐고 바로 거기에 박열이 걸려들게 된다. 결국 일왕 폭살계획이 알려지면서 체포된 박열은 이치가야형무소와 지바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게 된다.
사실 일제 식민지 통치가 자행되던 한반도에서는 항일운동이 오히려 갖은 제한에 부딪히거나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만주, 러시아 등지에서의 활동이 활발했고 일본내에서도 상당히 의미있는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리고 유학생과 선각자 등 당시 지식인들에 의해 이뤄진 의미있는 사건들은 그들이 겪었을 고민과 고통만큼이나 조직적이었고 체계적이었으며 지속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이봉창 의사가 사형당하고 김지섭, 박열 의사가 옥고를 치른 이치가야 형무소. 현재 형무소는 완전히 사라지고 어린이 공원이 들어서 있다. 그저 구석 한 귀퉁이에 서있는 옛 형무소 자리임을 알리는 표석을 보고 나서야 이곳이 이봉창과 김지섭과 박열이 생사의 경계에서 고통받던 곳임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다.
주관:한국보훈복지공단 보훈교육연구원
후원: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