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주년(2005년)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식민통치기간의 두배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정신적·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강제로 고향을 떠나 이국땅에서 갖은 차별과 탄압속에 고통받다가 숨져간 징용자들의 한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채 남아있다.
 
심지어 일부 징용자 유골의 경우 제대로 수습되지도 못한채 일본내 사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등 아직도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일제 36년간 꿈틀거렸던 강제징용의 역사는 해방후 60여년을 더해 무려 100년을 관통하는 동안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우리 가슴속 응어리로 남아있다.
 
◇강제징용의 역사=만주사변(1931년), 중일전쟁(1937년 )을 거치면서 일본의 침략야욕은 끝간데 없이 커져만 간다. 이는 곧 조선인의 희생으로 이어져 많은 물적자원이 수탈됐다. 특히 전시동원이라는 이름아래 많은 이들이 노무동원·병력동원·여성동원 등의 명목으로 연행돼 일본·중국·동남아시아 등지로 끌려갔다.
 
일본 기업의 대리인들이 앞장서 실시하던 징용은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관공서가 직접 나서는 보다 강제적인 방식으로 발전한다. 이것도 모자라자 조선총독이 발행하는 영장에 의해서 강제징용이 이뤄진다.
 
20세에서 50세까지의 조선인 남자가 주로 대상이고 거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의 숫자는 지금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표 참조〉 각 단체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고 그중에서도 일본 정부가 추산하는 숫자는 민간 시민단체의 그것보다 훨씬 적은 규모에 그치고 있다.
 
◇차별과 학살, 그리고 투쟁=강제로 끌려간 징용자들이 받았던 차별과 억압, 심지어 무자비한 학살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22년 니가타현 모부가와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집단학살의 현장을 묘사한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 신농천 강물에 조선인 노동자의 송장이 여러번 떠내려와 이를 조사한 결과 실로 천하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던지라. 신농천 발전소 건설 공사장에서 노동하는 조선인 600명은 당초에 조선에서 일본 사람이 모집하여 갈때는 하루에 8시간 노동하고 80원 받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가서 본즉 매일 새벽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7시간 동안을 소와 말보다 심하게 때리고 차며 강제로 노동을 시켰다. 이런 고역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하여 나오는 자가 있으며 공사업자는 즉시 육혈포로 쏘아 죽이고 다른 조선사람에게 본보기로 보인다며 신농천의 강물에 던져버렸다. 이와 같이 학살당한 조선 사람의 숫자가 몇명이나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질병에 걸렸다고 살해당한 자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100명을 넘을 것이다'. 이같은 조선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러나 일본의 강제연행에 그대로 굴복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해외로 망명하고 거주지를 옮기거나 군·읍·면의 하부 관료가 되거나 전시국방부문 사업체에 취업하기도 했다. 또는 강제연행을 하는 경찰이나 직원들을 협박하거나 살해하는 등 적극적인 저지책을 행하기도 했다.
 
또 조선인의 반발과 투쟁은 일본에서도 계속됐다. 홋카이도 유바리광업소에서는 징용자의 51%가 탈출했고 나머지 한국인들도 파업이나 태업 등을 집단적으로 벌였다. 특히 징용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각지에 조선촌이 형성됐고 점차 민족운동과 결합하게 된다.
 
조선인사회가 형성되고 노동현장에서 식민지의 구조적 모순에 눈뜨는 제1기(개항~1922년)를 시작으로 조선인노동동맹회 등 조선인노동조합이 결성되는 등 노동운동이 체계화와 조직력을 갖추기 시작한 2기(1923~1929년)에 이르게 된다.
 
또 조선인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히 전개된 제3기중에는 일제의 강력한 탄압으로 대부분의 조선인 노동운동가들이 검거되고 조합까지 해산되기도 했으나 오히려 조선촌을 중심으로 결속력과 경제력을 더욱 강화됐다.
 
제4기(1939년~해방)에는 민족독립에 대한 확신이 커지면서 비밀결사대 등과 연계된 노동운동이 전개된다.
 
◇원혼들의 쉼터=일본 이즈카 레이엔의 무궁화당에는 강제징용됐다 희생된 조선 노동자들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재일 코리아 강제연행 희생자 납고식 추도비 건립실행위원회'가 주체가 돼서 지난 2000년 세운 이곳에는 미이케탄광, 치쿠호탄광 등으로 끌려갔다가 희생된 유골 40여기가 모셔져 있다. 추도비에는 “지난날의 전쟁에 있어서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수많은 조선인과 외국인이 일본 각지로 강제 연행되어 왔습니다. 여기 치쿠호에는 15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탄광에 끌려와 가혹한 노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