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초원이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사막을 지나다 보면 말이나 양 같은 가축의 앙상한 뼈들을 보게된다. 이 같은 뼈는 어쩌다 하나씩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나 널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래된 짐승들은 이미 독수리의 먹이가 되었거나 바람에 풍화되어 앙상한 뼈만 남아있지만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축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쓰러져있다. 대부분 추운 겨울에 병들어 길을 잃고 쓰러졌거나 아니면 무리를 이탈해 갈증과 허기로 죽은 짐승들이다. 가다가 차를 세우고 죽은 말의 시체를 카메라에 담으며 생존법칙이고 자연의 순리라 위안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눈을 뜨고 죽은 말의 시체 앞에서 혼자 절망하고 혼자 안타까워하다 다시 길을 떠나기를 몇 번, 외롭고 고독한 것이 어디 짐승 만이겠는가 만은 어느 날은 유독 많이 띄는 말의 시체를 거치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츄, 츄!
이는 우리네 이랴! 와 같이 말을 몰 때 내는 소리다. 몽골인들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말을 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은 몽골 사람들에겐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말은 그들의 유목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란 역할을 한다. 드넓은 초원을 이동할 때, 사냥을 할 때, 이사를 할 때, 혹은 가축을 키울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일까? 몽골인들이 즐겨 부르는 전통가요에는 말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들이 좋아하는 가축은 말, 양, 염소, 소, 낙타 그리고 야크 등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것은 역시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가축은 필요할 때 잡아서 고기를 먹지만 말만큼은 자연사하기 전에는 잡는 법이 없다고 한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물론 가족처럼 살아온 말에 대한 몽골 사람들의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말은 사람의 심리를 잘 읽는 동물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매우 단순한 지능을 가진 짐승일 것이다. 말을 관찰해보면 그들은 하루 종일 머리를 땅에 처박고는 오직 풀만 뜯는다. 그 단순함은 무모하고 집요하다 못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몽골사람들은 말보다 영리한 짐승은 없다고 믿는다. 이유를 물어보면 적어도 자신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마을을 지날 때 이제 예닐곱밖에 안 된 아이들이 한 손엔 고삐를 잡고 한 손엔 채찍을 후려치며 말안장에 올라 초원을 질주하는 것을 보면 속도감에는 탄성이 절로 이는데 이때만큼은 말과 아이가 한 몸이라는 걸 유감없이 보여준다.
우리가 칭기즈칸을 이야기할 때 말을 제외할 수 없듯, 몽골이 한때 대제국을 건설했던 배경에는 야생에서 길들여진 강인한 몽골 말이 한몫 했음은 물론이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말을 타는 데는 몇 가지 요령이 필요하다. 우선 말과 사람이 한 몸이 되어야지 무조건 채찍만 후려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몽골 초원에선 어디서나 츄츄! 하고 말을 모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이 또한 크게 외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과 말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켜보면 주인은 가만가만 속삭이듯 하는 츄츄! 에도 말은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끄덕대며 전속력으로 달리지만 처음 타는 사람은 아무리 츄츄! 소리를 질러도 녀석은 들은 척도 안 한다. 주인과 손님을 어쩌면 그렇게 잘 구별하는지.
몽골의 말은 서양말에 비해 목과 다리가 짧은 대신 힘이 좋기로 유명하다. 척박한 고원의 사막기후를 이긴 강인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안장은 V자 형태로 가운데 들어간 부분에 엉덩이를 걸치는데 말을 세차게 몰 때는 바람처럼 거의 선 채로 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속도를 낼 수 없으며 설령 속도를 낸다고 해도 말에서 떨어질 위험이 크다고 한다.
몽골은 손님이 오면 환영의 인사로 자신이 타던 말을 내주는 풍습이 있다. 풍습도 풍습이지만 인정이 많은 그들로선 자신이 아끼는 것을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게르를 방문했을 때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이라도 한잔 나눈 후에는 잘 길들여진 말을 자랑이라도 하듯 타보라고 권한다. 물론 주인이 고삐를 잡아주어서 타는 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혼자 채찍을 후리며 지평선을 향해 맘껏 달리는 건 나 같은 여행자에겐 여간 두렵고 겁나는 일이 아니다.
나는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일반 민가와 홉스굴 게르캠프에서, 순록마을 가는 길에 몇 차례 말을 타보았지만 좀처럼 속력은 낼 수 없었다. 말도 저마다 성격이 있어서 어떤 말은 비교적 호흡이 잘 맞는 대신 어떤 말은 영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혼자 말등에 앉아 츄츄!만 외쳤는데 아마 말은 내가 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여자가 자기에게 노래를 속삭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내 말을 듣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