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 오전 11시께(현지 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 야샤시 마을의 한 병원. 건물 안팎에서 현지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검은 머리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이곳 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바로 ANF(All Nations Friendship) 병원의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들이다.
지난 96년 세워진 뒤 2002년 현재의 자리로 옮긴 ANF 병원은 현지인들 사이에 '천국'으로 불린다. 검사와 진료, 투약 등 모든 의료활동이 무료일뿐 아니라 최신 의료장비에 의료진들의 '실력'과 '정성'도 남다르기 때문이다.
심장내과 전문의인 안신기(42) 원장의 경우 2002년 7월 2년간 세브란스병원을 휴직하고 이곳을 찾았다가 올해초 아예 사표를 던졌다. 어떤 간호사는 12년간의 병원 수간호사 생활을 미련없이 포기하고 우즈벡을 찾았고, 환갑을 넘긴 고령의 한 외과의는 미국에서 개업의 생활을 하다 이곳에 정착했다.
현재 이들이 돌보고 있는 현지 환자수는 이동진료 대상까지 포함해 매달 1천500여명. 가난과 무지로 인해 변변한 치료 한번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안 원장은 “타슈켄트에서 1시간만 가도 전기, 수도가 전혀 안나오는 곳이 많다”며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에다 뇌성마비나 간질환 등을 앓는 버려진 아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처음에는 이곳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아 힘들었다”며 “(이슬람교인) 이들을 개종하기보다 마치 못난 자식 키워주듯이 함께 함으로써 힘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인일보와 분당서울대병원의 심장병 및 안면기형 어린이 수술을 주선한 신-쉬포 클리닉의 신동호(43) 원장 역시 우즈벡에서 나눔의 인술을 펼치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지난 2000년 자비를 들여 우즈벡에 병원을 차린 신 원장은 현재 40여명의 현지인 직원들과 함께 매일 40~50명의 환자를 직접 돌보고 있다. 수술때만 일부 비용을 받을 뿐 이 병원에서의 모든 진료활동은 무료다.
재정여건은 열악하지만 신 원장은 직원들과 함께 전화도 안 통하는 오지마을과 양로원 등지를 찾아 병든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다.
신 원장은 “우즈벡사람들은 순진할 정도로 착하다”며 “그냥 좋아서 한 것일 뿐 밖에 알려질 일이 전혀 아니다”면서 인터뷰를 끝내 사양했다.
이같은 한국인들의 의료지원활동으로 우즈벡 내에서의 대한민국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현지 교민들에게는 가슴벅찬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다.
한국교민회 박태운(40) 사무국장은 “한인 의사들이 펼치고 있는 정성어린 진료활동이 현지인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한국기업들의 철수와 복잡한 정치 사정 등으로 우즈벡 경기가 악화되면서 교민들의 사정도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한국 민간 의료진들의 활동이 교민사회에 큰 위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타슈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