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그곳으로 가다 -
8. 아름다운 길 아름다운 문화
#길은 머무르기 위해 이어진다.
‘길’을 답사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달린다. 답사는 걸어서 하는 게 제격이라고 차에서 내려 걷는다. 비로소 마을이 보이고 집도 보이며, 사람도, 동물도, 곤충도 보인다. 자동차에서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하나둘 눈에 꽂히듯 들어오고 이내 머릿속에 저장되는 듯하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것도 길이요, 집과 집을 이어주는 것도 길이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도 길이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전기나 전화 같은 문명의 이기가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이 현실이다. 전기나 전화를 위한 시설들은 어떠한가? 길을 타고 달리지 않는가. 하물며 휴대용 무선전화라 하더라도 이른바 기지국이라는 게 있고, 안테나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이동전화 기지국이 옛길(특히 봉수로)로 요긴하게 썼던 곳에 자리잡았다는 것쯤은 이제 알만한 이들은 다 안다.
사람이 만든 길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이 머무르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참으로 다양한 주거 형태와 생활공간, 문화공간 등이다. 시골에서 도회지로, 논밭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다시 집으로 돌고 돌아가는 것이 또한 길이다.
강원도 홍천에서 양평으로 들어오는 길, 지금의 44번 국도다. 양평에서 신당고개를 넘자마자 홍천군 남면 유목정리이다. 옛 양덕원이 있던 곳은 유목정리에서 개울만 건너면 된다. 이곳이 양평을 거쳐 서울로 가던 사람들과 물산이 모여 ‘머무르던’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남면사무소 자리가 옛 양덕원 터일 것이라고 한다.
옛 장터는 지금은 공터로 남아 있고 새 장터는 개울 근처로 옮겨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답사진은 시골장을 구경하는 복도 누릴 수 있었다. 옛 장터는 몇몇의 점포와 막걸리 양조장이 초라하게 지키고 있는데, 삼 사십여 년 전만 해도 충남집이며, 금난옥, 서울집, 두꺼비집 등 주막들이 번성했다고 한다.
‘이불 털 때마다 돈이 쏟아졌다’는 것으로 보아 긴 겨울 투전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것이 비록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라도 우리는 없어진 과거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그저 양조장에서 건네준 막걸리나 한 잔 마시면서 마을 노인들과 한담할 뿐.
유목정리에서 마방집을 물어물어 찾았다. 옛 흔적이 아직은 남아 있는데 바로 옆집이 유목정쉼터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옛 마방집 며느리라고 하는데 대를 이어가며 마방집을 하는 셈이다. 트럭을 비롯한 자동차 운전자들이 들러 막국수와 두부와 음료 등을 먹으니 현대판 마방집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또 바로 옆에는 주유소가 있어 자동차의 목마름을 해소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양덕원 옛 우시장 터에는 한우고깃집이 있었고, 양덕원 터 근처에는 대형 찜질방이 있어 밤낮으로 쉬고 자고 한다.
#길의 주인공, 사람에서 자동차로
길을 타고 돌아다니는 자동차의 변화도 무척 재미있다. 아무래도 최근 삼십여 년의 변화가 이전 백여 년의 변화보다 더할 것이다. 그 가운데 험로를 휘젓고 다니던 트럭을 오랜만에 만났다. ‘지엠시’라고 부르는 것보다 ‘제무시’ 혹은 ‘지에무시’라고 불러야 더 힘이 셀 것 같은 GMC트럭을 만난다. 거친 고갯길을 넘나들며 산판에서 실어온 통나무들을 옮기고 있다. 어릴 때의 풍경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지에무시’ 아니던가. 영어도 모르던 어린 시절 몇 마디 영어 중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들었고 썼던 말이다. 우리나라 자동차의 역사에서 이보다 더 질긴 차종이 또 있을까? 괜스레 든든해지는 것은 왜일까?
‘지에무시’가 싣고 다니는 단골손님은 요즘 뜨고 있는 숯가마용 참나무라고 한다. 웰빙이니 뭐니 하면서 건강에 좋다면 뭐든지 거리끼지 않는 지금의 세태를 구시대 운반 수단이 나르고 있어 재미있다. 웰빙해야 꼭 웰다이 할 수 있는 것일까? 산골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숯가마를 볼 때마다 ‘지에무시’와 ‘웰빙’, ‘웰다이’가 생각난다. 어떻게 해야 잘 살고 잘 죽는 것일까? 말없는 길에 물어보는 수밖에.
#길은 문화가 스며들어 번져 나오는 곳이다.
앞선 글에서 길은 동맥이라고 하였다. 평해로가 지나는 이곳 양평은 동맥 중에서도 대동맥에 든다고 할 만큼 중요한 핏줄이다. 한강을 끼고 있는 수로와 육로는 서울과 가까운 이점 때문에 더욱 각광받지 않았던가. 길이 발달하면 자연스레 문화도 발전하는 법, 특히 고급의 문화는 종교를 타고 들어오고 퍼져 나간다. 종교가 들어오는 교통로 또한 물길과 산길을 포함한 ‘길’이다.
용문산 서쪽의 사나사에는 원증국사 태고 보우대사가, 동쪽의 용문사에는 정지국사가 있어 고려 말의 불교와 문화를 이끌어 갔다. 또한 조선 말 권철신 선생을 비롯한 형제들과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형제들을 비롯한 양평의 지인들이 천주교와 서학 문화를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다. 행동하는 유교를 전파시킨 화서 이항로 선생 역시 양평 사람임에랴!
#아름다운 길에서 아름다운 문화가
길 가운데 단연 아름다운 길은 강길, 즉 수로와 산길 및 들길이다. 이 정경들이 문학도 잉태하고 미술도 탄생시킨다. 갤러리와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전시장이 많이 있는 곳도 정경이 아름다운 길 끝에 있는데, 수많은 미술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나름대로의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어림잡아 600여 작가, 중요 작가만 하더라도 200여 명은 족히 된다고 하니 양평을 미술촌이라고 불러야 할 듯도 하다. 더구나 요즘엔 갤러리 겸 카페가 늘어나 휴식을 찾는 사람들의 안목을 높이고 있다.
서종면 수입리에는 국내 최초의 국악음반박물관이 있어서 소중한 우리음악을 지키고 나누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노재명(36) 관장이 고교생 때부터 '국악에 미쳐서' 이룩해 낸 소중한 결실이다.
이런 저런 문화적 특징이 결집되어 탄생된 곳은 '서종문화의집'이다. 한 면 단위에서 전시장을 갖추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문학의 힘을 새삼스레 느낀다. 양평의 길들이 대동맥에 해당된다면 '서종문화의집'과 수많은 작가들, 그리고 박물관 등은 실핏줄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가장 바람직한 문화의 형태가 아닐 수 없다. 실핏줄문화가 활발할수록 동맥이며 대동맥 문화도 발전하는 것이므로.
팬션이라는 고급의 민박 문화가 일찍이 자리잡은 곳도 양평이다. 이 역시도 서울과 멀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곳에서 쉬고 싶은 도시민들의 욕구를 충족한 것이다.
#두물머리에 서서
특히 양평의 강변길은 많고 길기도 해서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한강은 팔당댐을 비롯한 댐들 때문에 이제 수로로서의 기능을 거의 잃었다. 또 예전 두물머리의 번성했던 광경을 기억하는 사람도 점차 없어져 가는 오늘이다. 수로가 지녔던 대규모 운반 수단의 쇠퇴는 우리에게 중요한 먹는 물과 전기 등을 가져다 주었다. 이 또한 길이라면 길이다.
한강 수로를 자유롭게 수영하면서 다니던 여러 물고기들의 길 또한 댐 때문에 끊긴 셈이다. 그러나 그를 대체할 방도는 마련되어 있다. 바로 경기도민물고기연구소이다. 이곳에 있는 생태 학습관은 이제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명소가 되고 있다. 연간 10만여명 이상이 관람하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15만여명의 관람객을 예상한다니 물고기와 사람을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두물머리에 서서 북한강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한 번 바라보고 남한강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한 번 바라본다. 얼마나 많은 산과 들에서 갖은 험로를 거쳐 내려왔을까? 남한강 북한강이 모여 한강을 이루듯이 남한과 북한이 모여 통일을 이룰 그날을 빌어본다. 통일의 길을.
<염상균 문화재답사 전문가>염상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