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그 신비 속으로
새벽 5시에 깨어 라면 하나를 도둑처럼 끓여먹고 배낭을 정리해 집을 나오는데 잠에서 깬 나타샤가 여전히 미소를 머금으며 대문에 서서 작별인사를 한다. 나는 그녀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 깊이 간직한 채 손을 흔들었다. 시장이 서는 곳에서 이르쿠츠크행 버스를 탔다. 이르쿠츠크에서 다시 알혼섬으로 가기 위해서다. 이르쿠츠크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도 채 안되었는데 정기 버스는 이미 끝나고 마이크로 합승버스가 알혼으로 간다하여 기다리는데 하세월이다. 12명의 손님이 모두 차야 출발하는 버스이기 때문이다.
두꺼운 윈드 재킷을 걸치고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리는데 유난히 키가 큰 청년이 친절을 보인다. 한여름이었지만 그는 검은 가죽점퍼 차림이었고 헤어스타일이며 이어폰을 끼고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청년은 아닌 듯 싶었다. 그는 7시간이나 같은 차를 기다리고 달리는 동안 손에서 맥주병을 한번도 놓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컴퓨터프로그래머였고 동시에 여러 장르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었다. 이름은 ‘키르프’ 여름 휴가 겸 알혼섬에 공연이 있어서 가는 거라고. 그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차 안에서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하며 나를 배려했다. 알혼으로 가는 길은 러시아의 모든 길이 그러하듯 굴곡이라곤 없는 곧게 뻗은 한산한 아스팔트다. 프리모스키(Primoski)산맥과 바쟌다(Bajandaj)에서 계속 남쪽으로 이동 선착장이 있는 샤흐르타에 도착한 뒤 차례를 기다려 바지선에 차를 옮겨 싣고 자글리만을 건넜다. 내가 가야할 목적지 알혼의 후지르(Huzir)마을까지 버스가 간다고 하니 잘된 일이다.
알혼섬으로 이동하는 동안 키르프의 장난기 어린 눈빛에서 나는 묘한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어린아이 같은 키르프의 눈빛이 때로 깊어 보이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에게서 비운의 천재가수 빅토르 최! 라는 한 청년을 떠올렸다. 그의 노래는 어느 혁명가의 구호보다 힘이 있었다.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카레이스키 3세로 록가수와 영화배우로 활약하다 의문의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빅토르 최.
차가 후지르 마을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바람이 불어 스산한 오후였다. 버스 위에 올려놓은 배낭을 기사가 내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키르프가 버스 뒤편으로 나를 데려갔다. 뽀얗게 먼지가 낀 봉고버스 뒤 유리창에 러시아어로 그가 써놓은 글씨를 보여주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나도 한국에 가고 싶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언젠가 러시아에 다시 오게 될 때 훌륭한 뮤지션이 된 키르프를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지나 않을까 상상하며 그와 헤어졌다.
바이칼 호수에 있는 18개의 섬 중 가장 큰 섬으로 알려진 알혼섬 후지르마을에 내려 버스기사에게 민박집 리키타네를 묻자 그는 사람들을 모두 내려준 다음 리키타네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알고 보니 나를 태우고 온 봉고버스기사도 리키타네 집에서 자고 내일 새벽 7시에 다시 이르쿠츠크로 간다는 것이었다. 이르쿠츠크와 알혼섬은 거리가 거리이니 만큼 하루에 왕복 운행은 힘든 모양이다.
가이드북에서 알게 된 리키타는 소문대로 다정다감한 아저씨다. 한때 그가 러시아 탁구 대표 선수생활을 했다는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문밖까지 달려나와 멀리서 온 여행자를 매우 반갑게 환영해 주었다. 한국에서 왔다 했더니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로 인사말을 바꾸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방을 소개하는 직원에게 전망이 좋은 특히 바이칼이 잘 보이는 곳으로 부탁했더니 대답이 호쾌하다. 나중에 보니 정말 그 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쪽 2층 방이 내 차례가 되었다. 키를 받고 그가 안내한 방으로 올라가니 오랜 시간의 여정도 잊을 만큼 탄성이 절로 나왔다. 조각 천으로 만든 정갈한 침대커버와 작은 식탁보,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박하게 꾸민 창이 내 맘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 방안에서도 바이칼을 한눈에 볼 수 있다니!
리키타네 집은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장식으로 서울 인사동의 소문난 어느 집을 연상시킨다. 집의 규모도 컸지만 여러 개의 방과 러시아식 사우나 시설과 단체손님을 위한 공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등을 두루 갖추었는데 하나도 같은 방이나 같은 장식이 없는 매우 특색 있는 집이다. 마당에는 각종 꽃들이 자라고 인형과 그림은 물론 눈에 띄는 것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넘쳐난다. 식당이나 바냐 시설도 소박하고 편리하게 꾸며져 청결하고 재미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누구나 집안 꾸미는 일을 즐긴다고 한다. 주택은 대부분 목조로 되어 나무 냄새가 짙게 배어있고 망사커튼이 걸려있는 창가에 예쁜 화분으로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다. 성글게 엮은 나무 울타리 안으로 집안을 들여다보면, 어느 집이든 작은 비닐하우스가 달려있는 채마밭이 있고,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