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대 금강산 수학여행을 가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철원역에서 금강산행 열차를 기다리며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인일보 창간 45주년 특별기획-금강산 철도는 달리고 싶다]

 남북간 화해분위기 조성으로 끊어진 경의선과 동해선의 연결공사에 따른 물류 이동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국토의 중부내륙을 횡단했던 금강산 철도(철원역~금강산)의 복원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물류중심의 남북간 철도 연결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금강산 철도의 복원은 인적교류 활성화를 통한 괴리감 해소와 동반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따라 경인일보는 창간 45주년 기획특집으로 열린우리당 윤호중(구리) 의원실과 공동으로 운행중단 55년을 맞고 있는 금강산 철도의 복원을 공식제안하면서 기대효과를 중점 제시해본다. 〈편집자주〉


1. 기차타고 금강산소풍 가자

 일제 강점기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금강산으로 가는 것이 그다지 별난 일은 아니었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경원선을 타고 달리다가 철원에서 갈아타기만 하면 내금강 온정리에 닿았다.
 17일 윤호중 의원실이 입수한 조선열차시각표와 관련자료에 따르면 금강산 철도는 경원선 철원에서 분기된 지선으로 금강산 온정리역까지 28개역을 운행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철도로 연장 116.6㎞이다.

 1945년 해방당시까지 서울역에서 금강산 온정리까지 운행되던 금강산 기찻길은 분단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반세기 넘게 땅속에 묻혀 있다. 지난 31년 완공돼 45년까지 운행됐던 금강산 철도는 매일 오전 6시30분 첫차부터 오후 5시10분 막차까지 하루 8차례 운행됐다. 4시간 정도 소요돼 금강산 수학여행과 관광객들을 주로 실어날랐다. 요금은 6원으로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3만8천원대로 당시 서민에게는 큰 돈이다. 37년에는 승객 15만3천여명이 이용했고 수화물 1만t을 운송했다.

 청량리역을 출발하는 기차가 철원에서 분기되어 내금강 온정리 방향은 관광용 금강산 철도, 원산으로 빠지면 주로 물류수송인 경원선이 된다. 특히 외금강역에서는 동해북부선과 합류하는 노선으로 현재는 금강산에서 원산까지 단선철도가 운행중이다.
 금강산 철도가 복원된다면 현재 서울에서 고성을 돌아가는 금강산까지 관광과 물류 수송체계의 획기적 변화와 함께 국토의 중앙 중부내륙을 횡단하는 전철의 복원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또 금강산 철도가 놓이면 당일 왕래가 가능해지고 관광여행비도 훨씬 더 적게 들어 유람선보다 많은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죽기전에 한 번은 금강산에 올라야 한다'는 전해오는 말이 있다. 선인들은 부채나 병풍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즐겨 그렸다. 보다 편리하게 금강산을 유람할수 있는 길을 빠른 시일내 복원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과제로 떠올랐다.

 윤 의원은 이와관련 “금강산 철도 복원은 남북간 화해분위기를 더욱 성숙시키고 북측 비무장 지대의 문호를 더욱 넓게 열어젖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면서 “기존 노반이 아직까지 살아 있어 연결에 큰 어려움이 없다. 버스를 이용한 금강산 육로관광은 현재 시간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철도가 연결되면 당일 수학여행도 가능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