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우촌 호적등본(인천시 중구청).
 
   윤진현 박사는 진우촌이 인천지역에서 활동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1904년 7월22일 출생한 진우촌이 인천 출생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지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다만 진우촌의 재종조부이며 동아일보 초대 기자로서 일제 강점기 중요한 언론인이었던 진학문의 아버지 진상언이 인천 감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인천과 진씨 일가의 인연은 짐작보다 오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진우촌의 제적등본에는 다이쇼 4년(1915년) 12월5일 인천부 율목리 180번지에 이주한 사실이 밝혀져 있고 이어 208번지로 이사한 사실도 기록돼 있으나 그 이전의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이 집안의 제적등본에 따르면 율목리와 내리, 송현리 등으로 자주 이사를 다녔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우촌의 아버지 진수(秦秀)는 세창양행에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는 바,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부친이 여기에 근무하면서 인천으로 이주하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주한 인천에 정착해 유년을 보내고 서울로 진학한 이후에도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이는 1920년대 내내 지속됐다. 따라서 인천 출생 여부와 무관하게 진우촌을 '인천인', 한 시기를 열심히 살았던 자랑스러운 '인천 사람'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진우촌 일가는 1942년 서울 부암정으로 이주했으며 그 후 무연고 호적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