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체가 덜컹거린 때문이었을까. 살며시 눈이 떠졌다. 시계는 캄보디아의 국경도시 포이펫(Poipet)을 떠난지 2시간, 우산으로 작열하는 태양을 가려주며 천원을 외치던 아이들을 뒤로 하고 태국 국경을 넘은지 3시간이 지나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관광천국 태국에 없는 카지노가 2시간 전 출발한 이곳 캄보디아 국경도시에 있었다. 방콕의 부호들이 차로 달려와 밤을 새고 돌아가는 곳이다. 우리가 국경을 넘어 점심을 먹은 곳도 카지노 호텔이었다. 한 낮인데도 벌써 몇 몇 사람들이 카드에 빠져있었다. 우리 또한 하루를 묵었다면 카지노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으리라.

 차는 비포장길 못지 않게 덜컹거리는 포장길과 기억저편에 묻혀있던 어린시절 신장로보다 못한 황토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길을 달리고 있다.
 우리가 몸을 싣고 있는 버스는 국내에서는 이제 찾아보기조차 어려울 듯한 구형 '아시아자동차'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일본이나 유럽쪽 관광객을 의식한 듯 이 차에 미쓰비시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로고를 칠해 놨다. 하지만 안에는 '자동문' 등 국산임을 알리는 한글들이 그대로 있어 낯선 곳을 방문한 여행객을 미소짓게 한다.

 창 밖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논과 도로변에 늘어선 야자나무 가로수, 점점이 보이는 집들이 낡은 영화필름이 튀듯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164㎞를 4시간이나 달린 끝에 일행은 무수한 전설과 유적이 숨쉬는 곳, 캄보디아 제3의 도시 씨엠립에 도착했다.

 #톤레삽호수와 사람들
 여장을 풀기도 전에 동양 최대의 호수라 불리는 톤레삽으로 직행했다. 장관이라 알려진 이곳의 일몰을 놓치면 후회한다는 가이드의 꾐에 넘어간 것이다.
 배를 빌려 몸의 절반 가량을 물속에 담그고 있는 나무들이 안내하는 수로를 따라 10여분 나가니 눈앞에 호수가 아니라 대해가 펼쳐졌다. 캄보디아 국토의 15%를 차지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광활한 호수를 마주하고 바라보는 낙조는 가이드의 말이 과찬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보는 이의 눈을 황홀하게 했다.
 우기때 강을 거슬러 역류하는 물이 유입되면 호수는 건기때의 두배가 넘는 경상남북도와 제주도를 합한 크기만한 바다로 변한단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섭취하는 단백질량의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공급한다니 사람들이 호수를 신이 내린 축복이라 생각하며 경외시할만하다 싶다.
 어둠이 내리자 호수 위에 지어진 수상가옥에 하나 둘 불이 켜졌다. 배터리로 밝힌 불빛 아래서 짧은 시간이나마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낙이란다.

 호수를 터전삼아 사는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은 모두 호수물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며 일도 보고 이곳에서 나는 물고기로 먹거리를 마련한다니 참 편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양동이를 타고 노는 아이, 작은 배를 한가로이 젓고 있는 꼬마 남매 위로 호수에 어둠이 소리없이 내려왔다.

 #앙코르(Ankhor), 앙코르와트(Ankhor Wat)
 이른 아침 서둘러 채비를 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앙코르와트를 볼 수 있다는 설렘때문에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시엠립 북쪽 5㎞의 톤레삽호수 북안 근처에 있는 이곳은 한때 주변 80여㎞에 1천여개의 사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도 복원작업과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가이드가 알려줬다.

 일행은 크메르 왕국 앙코르 왕조시대(9세기 초∼15세기 초) 최번성기를 구가했던 자이야바르만 7세(1287~1319)가 세운 앙코르 톰을 시작으로 유적탐방에 나섰다. 톰은 크다는 뜻이니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한 방향이 3㎞인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곳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것이 바이욘사원이다. 불교양식으로 지어진 사원에는 앙코르의 미소로 불리는 54개의 탑 4면에 216개 부처가, 사원의 벽면에는 전쟁과 승리, 축제 등 왕의 업적을 기리는 부조가 양각기법으로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바이욘에 이어 피메나카스사원을 들렀다. 밤에는 여자가 되는 뱀과 먼저 동침을 해야 왕이 왕비와 잠을 잘 수 있다는 전설이 숨쉬고 있는 곳이란 설명에 묘한 상상에 젖어든다.
 인근 바프온사원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사원 앞에는 일련 번호가 매겨진 돌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다. 복원작업에 나선 프랑스 학자들이 모든 돌들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 거대한 퍼즐을 맞추듯 돌들의 위치를 찾아내 번호를 매겼단다.

 영화 툼레이더스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팔이 여럿달린 괴물과 사투를 벌이던 장면을 촬영한 타프롬 사원을 지나 남국의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앙코르와트에 도착했다. 이곳은 수리아바르만 2세(1113~1150)가 자신의 유해를 안치하고 상징적·종교적으로 비슈누 신과 자신을 영원히 동일시하기 위해 세웠다.

 연꽃 모양을 한 중앙탑과 제3회랑의 모퉁이에 있는 4개 탑은 힌두교 신들이 사는 5개의 봉우리를 가진 메루산(Mahameru, 불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