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그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쳐온 것은 지난 98년. 언제나 묵묵히 든든한 내조를 아끼지 않았던 아내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것. 몇 차례의 큰 수술도 효과가 없었고,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퇴원시켜야만 했는가 하면 무엇보다 이제 막 사춘기를 넘긴 자식들에게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해야만 하는 아픔이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는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는 아내를 낮 동안이나마 돌보아줄 간병인을 구하기위해 자신의 월급 절반 이상을 써야만 했고 나날이 늘어가는 자식 학비걱정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그러나 문 상사는 이러한 자신의 현실을 비관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부대에서는 임무에 더욱 충실했고 퇴근해서는 밤새는 줄 모르고 굳어진 아내의 손과 발을 주물러주었다. 이러한 부정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큰 딸은 대학에 진학했고 아들은 부사관을 지원하여 아버지의 길을 걷고있다.
그러나 또 한번의 시련이 다가온 것은 이태전. 하나뿐인 아들이 군에 입대하여 교육훈련을 받던중 허리를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고 수술 후유증으로 평생 한 쪽 다리를 절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처럼 계속되는 시련에도 문 상사는 단 한순간도 온화하고 자상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들에게 문 상사는 아버지로서, 군의 선배로서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주었고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군에 복무할 수 있음을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또한 부대에서는 늘 부하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기울였으며 병사들의 어려움을 찾아서 해소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이 불우한 병사에게 남몰래 도움을 주기도 했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병사들에게는 용기를 북돋워주기도 했다.
특히 금년 초 실시한 혹한기 훈련때 문 상사는 병사들이 추위로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화목난로를 손수 제작해 물을 끓이고 훈련 후 전원이 따뜻한 물로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도록 했다. 신병과 감기 걸린 병사는 난롯가에 따로 재우며, 커피를 타 주고 격려해 주었다. 이러한 문 상사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훈련기간 중 동상환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고 중대에서 비전투 손실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됐다.
그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모습을 닮았는지 아들인 문승혁 중사도 불편한 몸을 이겨내며 같은 오뚜기 부대 전차대대에서 성실하게 복무하면서 아버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5년이라는 힘든 세월 동안 머리는 하얗게 변하였고, 주름살도 더 늘어났지만 문 상사의 마음에는 더 큰 사랑과 여유가 생겼고 이로 인해 아내와 자식 그리고 병사를 더 포근히 감싸안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세상을 다 감싸는 듯한 문 상사의 얼굴을 보면서 청솔대대 병사들은 그를 가리켜 '자랑스런 아버지'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