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을 모아놓고 '약자를 괴롭히는 일만큼 세상에서 나쁜 일은 없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사심없고 인정이 많으신 그런 분이셨습니다.”

평택시 비전동에서 수년째 '한옥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시라소니(본명 이성순·1916~1983년)의 셋째딸 이선숙(53)씨는 “아버지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의로운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일제 강점기 암울했던 시절 나라 잃은 설움을 주먹으로 달랬던 김두한, 시라소니 등 전설적인 주먹들의 이야기를 다룬 SBS의 '야인시대'가 3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주먹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김두한과 천하를 누벼온 철권의 장사 시라소니가 대결을 벌이면 과연 결과는? 이같은 질문에 이씨는 “아마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김두한까지 형님으로 깍듯이 모셨던 시라소니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을까.
시라소니는 1916년 2월29일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그저 평범한 보통 소년이었다. 그런 시라소니가 주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신의주 보통학교를 함께 다닌 일본인 동창생이 한인 친구들을 괴롭히자 이 일본인 동창생을 흠씬 때려주면서 부터였다.

이때부터 시라소니는 신의주에서 철권 주먹으로 이름을 크게 떨치기 시작했으며 신의주에서 압록강 철교를 건너 만주 사이를 오가는 기차를 뛰어오르며 밀무역을 시작했다. 시라소니란 별명도 그때 붙여진 것.

한번은 열차에 오르다 떨어졌는데 절벽 밑으로 떨어진 새끼 호랑이 같다 해서 '시라소니'란 별명이 붙여졌다는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이씨는 “아버지는 단순히 밀무역을 하기위해 달리는 기차를 올라탄 것은 아니었다”며 “동료 분들은 '독립군의 군자금에 쓰일 금괴를 나르기도 했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가 독립군을 돕기위해 하셨던 일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단순히 주먹으로만 불리어졌던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드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시라소니는 부인 이진옥(76)씨와의 사이에 1남 5녀를 두었다. 첫째, 둘째딸은 뉴질랜드로 이민을, 넷째딸은 서울에서 사업을, 다섯째는 유학을, 막내아들은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가족 모두가 서울 회현동 경동 호텔 앞 2층 한옥집에서 살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당시를 기억해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존댓말을 쓸 정도로 가정적이셨습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는 글쎄 한 50점 정도였어요. 한번 외출하시면 일주일, 또는 한달 가량을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자식키우랴, 돈 벌랴 고생 참 많이 하셨지요. 아버지를 원망했을법 한데 어머니는 항상 조용히 아버지를 따르셨어요. 아버지는 저희에게도 욕 한번 안하셨던 분이에요. 가장 심한 말이 '에미나이 새끼' 정도 였으니까요.”

이씨는 “이화룡, 정팔이 아저씨 등 아버지를 따르던 주먹계의 후배들이 회현동 집을 자주 찾았었다”며 “그때 마다 이들은 많은 용돈을 쥐어 주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왜소한 모습에 지저분한 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실제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며 “항상 중절모와 정장을 하고 다니셨다”고 말했다.

“키는 한 1m75㎝에 몸은 근육질이셨습니다. 극중에선 항상 술에 취한 모습이지만 술은 즐겨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작고 왜소한 모습으로 비쳐지는지 이해할 수 없더라구요.” 이씨는 “아마 아버지의 빠른 몸놀림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동료분들은 아버지의 싸움 기술중 공중걸이(몸을 날려서 하는 박치기)는 세계 최고였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전했다.

이씨는 “휴전후 아버지가 장면 박사 등의 경호원을 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며 “아버지는 어느 한곳에 속하지 않는 자유인이셨다”고 새로운 사실을 전했다. 특히 이씨는 “아버지가 동대문 사단에 집단 린치를 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은 전혀 사실 무근이다”며 “5·16 혁명이후 주먹세계와 손을 끊고 편안한 삶을 사시다 여생을 마치셨다”고 바로 잡았다.

이씨는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 항상 신의를 중시하고, 약한 이들을 도왔던 시라소니의 딸 이라는 점이 무척 자랑스럽다”며 “아버지는 잊혀진 전설이 아닌 살아있는 협객이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 처럼 평생 조직을 이끌지도, 구역을 만들지도 않았던 시라소니. 함부로 주먹을 사용하지도, 남에게 큰 소리 한번 쳐 보지 않았던 시라소니. 그는 우리곁에 진정한 야인으로 남아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