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한결같이 나전칠기만을 고집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공예마인드로 대한민국 명장(나전칠기 名匠)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장인이 있다.
무형문화재 경기제24호 나전칠기장으로 양주시 산북동에서 정(正)공방을 운영중인 천봉 김정열(天峰 金正烈·49)씨가 그 주인공.
김씨가 나전칠기에 첫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14세때. 자신의 어머니 고향이자 전통 나전칠기의 고장인 경남 통영에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전칠기의 장인 안창덕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이 나전칠기와의 외길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조개껍질을 숫돌에 갈아 얇게 만들고 필요한 문양을 잘라내 나무에 붙인 뒤 칠을 올려 광을 내는 나전칠기의 험난한 학습과정이 계속됐고 그후 고 김태희(중요무형문화재 10호 나전칠기장) 선생의 제자인 조성훈 선생의 사사를 받으며 본격 나전장의 길로 나섰으나 당시만해도 이름없는 장인으로 생계유지가 힘들자 나전칠기를 일시 접고 개인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벌인 사업마다 모두 실패한 김씨는 1986년 양주시 산북동에 터를 잡고 예전의 나전칠기로 회귀하면서 천부적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작품구상에 몰두하던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인 양주별산대놀이의 상좌, 옴중, 소무 등 다양한 탈이 눈에 띄었고 아직 나전칠기에 써본 적이 없는 이러한 탈을 응용해 만든 양주탈장신구가 제22회 전국공예품경진대회(1992) 대상과 전국기능경기대회(1993) 금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나아가 그는 경기도 우수기능인, 문화재 보수기능(칠공·1995)에 이어 96년에는 기능인 최고의 영예인 명장 칭호를 받음과 동시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고 98년 마침내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4호 나전칠기장으로 지정받았다.
천봉선생이 나전칠기에 쏟는 정열과 고집은 지난 2001년 양주시청사 개청을 기념해 제작한 폭 3m, 높이 1.7m의 나전칠기벽화에 잘 드러나 있다.
양주별산대놀이의 탈과 춤사위를 3차원적으로 구성한 이 작품은 제작기간만 1년여가 소요되는 등 규모나 작품성 면에서 나전칠기 장인들간 기념비적인 대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나전상감기법 특허를 비롯 3개의 전통 특허를 소지하고 있는 그는 2001년 철탑산업 훈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현재 국내외 전승공예 교류·명인전의 출품과 초대, 실연 및 강의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지난 15일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초대작품전에는 5년이나 걸린 국산 통오동나무판에 생옻과 온당초무늬자개를 올린 소반, 전통 주름질과 끊음질자개의 정수를 보이는 포도무늬홍송서류함, 대원군난초를 올린 나전난초도, 봉황무늬자개의 두레반과 해주반, 쌍학무늬자개구절판 등 일반인이 접하기 쉽지 않은 주옥같은 작품들이 선보였다.
현재 정부조달문화상품협회 부이사장과 전국기능경기대회 나전칠기 심사위원장으로 활동중인 그는 “명장으로 가는 길목 역할을 해 준 양주시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나전칠기와 접목시켜 전통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계승을 위한 후진 양성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35년 고집으로 꽃피워낸 나전칠기 명장 김정열씨
입력 2003-12-26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12-26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22 종료
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최종 확정된다면 국회의원직을 잃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됩니다. 법원 판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