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주시 마전동 딸기재배하우스에서 대한 강추위도 무색하고 붉게 잘 익은 탐스러운 딸기를 수확하고 있는 양주골 딸기연구회 우호희 회장.
“대한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붉게 잘 익은 탐스러운 딸기를 수확할때면 그동안 함께 고생한 딸기연구회 회원들의 고마움이 느껴집니다.”

지난 70년대 한때 양주의 대표적 특산물로 자리했던 '양주 노지딸기'의 신화를 30여년만에 재창조해 양주딸기의 제2의 전성기를 일궈내고 있는 양주골 딸기연구회 우호희(62) 회장.
 
강원도 태생의 우 회장은 18세 되던 해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9년여동안 온갖 고생끝에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서울근교 농촌동인 양주에 정착했다.
 
그러나 낯선 농촌의 현실은 처음부터 좌절의 연속이었다.
 
집 한칸, 땅 한평 없던 그에게 선뜻 농지를 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렵사리 빌린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지을만하면 지주가 땅을 도로 회수해 가는 바람에 끼니 해결조차 여의치 않은 고난의 나날이었다.
 
우 회장은 “당시 먹을거리가 없어 밀가루로 풀죽을 쑤어 간장으로 간을 해 먹었고 통 보리밥 한 공기로 하루를 연명한 적도 있었다”며 당시의 힘든 상황을 회상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에게도 재기의 기회가 찾아왔다. 69년 당시 닭값 폭락으로 병아리를 내다 버릴때 그는 인근 부화장을 찾아 외상으로 헐값에 병아리를 가져다 키우기 시작했다.
 
암수를 철저히 선별하고 사육목적에 맞게 산란계와 육계로 키운 것이 효과를 나타냈다. 양주 삼숭리에서 서울 퇴계로까지 자전거에 닭을 실어 나르며 판로를 개척했고 꾸준한 신용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사업의 신뢰를 키워 나갔다.
 
조금씩 생활의 여유를 찾기 시작한 우 회장은 지난 78년 농업기술자연합회에 가입하면서 유기농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농약살포는 곧 간접살인이란 교육내용에 충격을 받은 그는 유기농 퇴비생산에 몰두했고 거듭된 도전과 연구끝에 86년 전국농산물품평회에 콩을 출품해 금상을 받았고 96년에는 새 농민상 본상을 수상하는 결실을 일구었다.
 
우 회장이 30년만에 다시 딸기농사에 도전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양주시 농업·농촌발전기획단 자문위원으로 농가의 고소득원 발굴에 고심하던 그에게 성장이 빠른 초촉성 딸기가 눈에 띄었다.
 
지난 2003년 시험재배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우 회장은 딸기재배에 참여의사를 밝힌 인근 18농가와 함께 지난해 1월 양주골 딸기연구회를 출범시켰다.
 
회원들은 기술 및 경험부족 극복을 위해 극 조생종 딸기재배로 유명한 함양과 거창, 진주, 사천, 논산 등을 수십차례 찾아다니며 기술지도를 받았고 지난해 12월 양주시 마전동 딸기생산 비닐하우스에서 개최한 딸기평가회에서 농협관계자와 참석인들의 호평을 받았다.
 
성공적 평가속에 우 회장의 발길은 바쁘기만 하다. 딸기연구회 회원을 40농가로 늘리고 재배면적도 2만5천평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딸기의 크기와 당도, 색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액비제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다시마와 옥가루 등 천연재료를 이용한 액비를 시중가의 30% 이하로 저렴하게 공급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6년까지 국내품종으로 종묘를 모두 교체하고 친환경 인증제를 도입해 일본계 딸기에 지불하는 로열티 문제를 해결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있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신기술개발과 신용 그리고 소비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어야 농업이 살아날 수 있다”는 우 회장은 양주농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참농업인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