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시작 활동을 한 그는 1985년 가을 노동문화패 '두렁' 등과 함께 인천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고인은 이후 인천지역 노동자들의 고통스런 삶을 형상화한 시작활동을 계속해 왔다.
고인은 1981년 '반시'(反詩) 6집에 시 '수유리에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특히 고인은 박노해, 백무산, 김해화, 김기홍 등의 노동자 출신 시인들의 출현을 이끌며 '현대 노동시의 개척자'로 불렸다. 인천에서는 인천민예총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를 만드는데 주도적으로 힘을 보탰으며, 최근까지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 활동해 왔다.
이세기 시인은 “노동시인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삶을 살았다”면서 “선생의 죽음으로 시대정신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아쉽다”고 애도했다.
한편 고 박영근 시인장 장례위원회는 15일 오전 8시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시인장'으로 영결식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