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렌즈 말벌①

그녀는 기대를 단단히 하고 저 문을 은밀히 열고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입술부터 찾을 것이다. 한데, 그곳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면…아니 꼭 이물질이 아니라도 날계란 냄새가 난다면, 하필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가 날계란이라면…. 박준호는 정말 열심히 닦는다. 적당히가 아니라 샅샅이 닦고 또 닦는다. 어디 칫솔질뿐인가. 혀바닥도 솔 끝으로 파내듯이 긁어낸다. 그녀와의 입맞춤을 상상하며 닦는다. 시루코와의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감칠맛 나는 아니, 온 전신이 녹아버릴 것 같이 아련한 키스…. 그래서일까, 시루코가 더 기다려진다. 왜 이리 늦을까. 분명히 오고 있는 길이라고 했는데….

다행히 소파에 앉으면 바다가 손끝에 잡힐 듯 바라다 보였으므로 혼자 무료한 느낌은 받지 않는다. 파도가 흡사 발끝을 적시며 쳐 오는 것 같다. 낚싯대를 소파에 앉아 담글 수 있을 정도로 바다는 가깝다.
잠깐 눈을 뜨면 몸 전체가 새하얀 요트들이 들쑥날쑥 춤추며 항해하고 있고, 그 너머로는 청어잡이 소형 선단이 뒤늦은 출어를 위해 포구를 빠져나가고 있다. 그 위로 이제 막 페인트 깡통에서 빠져 나온 것 같은 눈부신 백색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떼 지어 날고 있다.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 철썩철썩 파도 소리, 뿌웅뿌웅 뱃고동 소리, 철푸덕 철푸덕 고기잡이를 끝내고 이제 막 포구에 들어온 배들이 무거운 닻을 바다에 빠트리는 소리, 선창가 사람들이 뭔가 주고받는 웅웅 목청 높은 소리, 맑은 햇살을 직접 쪼이고 말겠다는 듯이 기어코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망둥이의 쏙쏙 소리 등등 그 모든 해조음을 오리지널 현장음으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마치 오디오를 통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 홀 그것도 특석에서 원음으로 경청하는 것 같은 뿌듯함이라고나 할까.
누군가 “철컥” 방 문 따는 소리가 난다. 문이 열린다. 시루코다. 시루코가 마치 외출에서 귀가하는 어머니처럼 들어온다. 아담하면서도 통통한 느낌을 주는 체형도, 늘 다정한 미소를 띤 얼굴도, 한두 올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기 위해 가느다란 손가락을 펴드는 모습도 영락없는 어머니다.

박준호가 하마터면 어머니라고 부를 뻔했다고 하면 너무 직설적인 표현일까. 그러나 옷차림은 다르다. 어머니의 그것보다 훨씬 프레시하다. 시루코는 얇은 실크 모슬린으로 만든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있다. 보기만 해도 편안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옷이다. 그 원피스 위에 사넬룩으로 불리는 세 줄짜리 진주목걸이, 로베르 구셍이 디자인한 보석 귀고리, 타일랜드 산 연보라 루비가 박힌 팔찌 등으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는 거추장스러운 멋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부하지 않다. 실크 모슬린만 해도 그러하다.
여름 원피스라면 당연히 흰색이거나, 하늘색이거나, 치자색이어야 걸맞는 것 같은데 엉뚱하게도 멋지게 단풍든 너도밤나무 잎사귀 색깔이다. 물론 모자도 너도밤나무 단풍색이다.

“준호, 너 배고프지?”
그녀가 방문에 선 채 계속한다.
“너, 브라이튼에서 제일 맛있는 요리가 뭔지 궁금하지 않니?…나가자. 내가 그 궁금증 풀어 줄게.”
“전,…먹었는데요.”
박준호가 대답한다.
“먹었다구?”
“네.”
“어디서?”
“여기서 조리해 먹었어요. 전 배고픈 걸 못 참거든요.”
박준호가 뒷머리를 긁으며 말한다.
“준호, 네가 직접 조리해서 먹었다구?”
그녀도 놀랍다는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