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치고 달려 가고 싶은데도 웬일인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박준호는 오랫동안 그렇게 얼빠진 강아지 모양 오도커니 앉아 있다. 이윽고 어머니가 박준호를 발견할 수 있을만한 거리까지 왔을 때, 아니 당신이 “너 준호지? 준호야!”라고 소리쳐 주었을 때 박준호는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냅다 달린다. 하나 방향은 어머니 쪽이 아니다. 엉뚱하게 녹숨 냇가 쪽이다. 박준호는 그토록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어머니와의 감격스런 만남이, 아니, 그 화려한 황홀감이 두렵다. 그래서 도망치는 것이다.
어머니가 가져오던 선물 가방을 내려놓고, 박준호를 향해 뛰어온다. 박준호는 어머니가 잡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도망치지 않는다.
어머니가 박준호를 끌어안을 장소를 미리 선정해 놓고 발걸음을 옮겨 놓는 것이다. 어머니의 숨이 더 이상 차지 않을 만큼의 장소, 이를테면 녹숨을 지나 땅콩 밭 부근 버드나무 숲이 우거진 작은 모래 밭 쯤에서 박준호는 어머니에게 못 이긴 척 잡혀 준다.
그리고 박준호는 어머니의 달콤한 냄새를 허겁지겁 맡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한없이 즐거운 황홀한 순간이다.
“내 아들, 준호야!”
어머니도 박준호를 무서운 힘으로 끌어안는다. 숨이 헉, 막힌다. 아니, 숨이 막힐 만큼 어머니에게 끌어안기는 것보다 더 큰 쾌감도 없다.
“저기서, 엄마를 기다렸구나.”
어머니가 박준호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잇는다.
“그렇지?”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한데, 왜 엄말 보고 도망쳤니?”
여전히 입을 다문 채다.
“엄마가 밉니?”
“그래, 미워.”
박준호가 마음에는 없는 대답을 한다.
“왜 미워?”
“약속을 안 지켰으니까.”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었니?”
그쯤 되면 박준호의 목이 컥 소리 나게 막히기 마련이다. 왜 그처럼 황홀한 순간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모른다고 박준호는 혼자 멋쩍어 하며 어머니 어깨 너머에 숨어 주먹으로 눈물을 훔친다. 누가 뭐래도, 그때 박준호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절대적인 존재다. 어머니가 박준호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박준호 역시 존재해야 할 가치가 없다. 고로 어머니가 곧 박준호 자신이며, 박준호 자신이 곧 어머니인 셈이다.
“어머니, 어머니.”
그날 당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주문인양 중얼거렸을 때처럼 박준호는 시루코의 브래지어 끈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입을 연다.
“부인은 언제 봐도 멋있었습니다.”
“그으래.”
“정말입니다. 하네코가 집으로 초대했을 때도 전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인이 집에 안 계신다고 해서… 사실은 부인이 만들어 주는 일본 요리를 먹고 싶었거든요. 하네코는 엄마가 일본 요리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 먹었다고 늘 자랑했거든요.”
박준호가 시루코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정말, 너 날 좋아하니?”
“네, 부인.”
“나, …어디가 그리 좋아?”
“다 좋습니다.”
“내 가슴, 마음에 드니?”
그녀가 아직도 브래지어 속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젖무덤을 두 손으로 싸안아 들어 보이며 묻는다.
“맘에 들어요.”
“얼마만큼 맘에 드니?”
“이 세상의 온갖 대지를 촉촉이 적셔 주는 비만큼요.”
“이 세상을 적셔 주는 비?”
“네, 대지를 적시며 내리는 비요.”
“너, 비를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네, 좋아해요. …부인의 가슴만큼.”
시루코가 피식 웃는다. 그리고 박준호의 손을 잡는다. 손가락에 손가락을 낀다. 그녀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