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 미국 심장부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동시다발테러 이후 3개월여만인 6일 미국이 선포한 대(對)테러전의 첫 상대인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사실상 항복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비호해온 탈레반 정권을 겨냥해 공습을 시작한 10월7일부터 약 두달만이다.
아직 미국은 제1의 적인 빈 라덴을 잡지 못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사상 유례없는 테러로 큰 상처를 입었던 미국은 예상보다 빨리 승리, 강대국으로서 자존심을 살렸다.
3개월여 전인 9월11일 테러범들은 여객기 4대를 납치, 워싱턴 국방부 건물과 뉴욕세계무역센터 건물을 향해 자폭테러를 감행했다.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는 순식간에 폭삭 주저앉고 국방부 건물은 반쪽이 됐으며 무려 3천5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심장부를 짓밟은 엄청난 테러에 미국은 물론 전세계는 경악했고 부시대통령은 12일 테러를 전쟁행위로 규정하고 “21세기 첫 전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이어 16일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의 배후로 빈 라덴을 지목하고,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 정권에 3일간의 시한과 함께 신병을 인도하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그러나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는 빈 라덴의 신병인도를 거부하고 18일 '지하드(성전)'를 촉구하며 파키스탄 국경지역과 주요 거점에 병력과 중화기를 증강 배치, 전시체제에 돌입했다.
미국은 아랍권 및 이슬람권 국가들의 거센 반미·반전여론을 다독여가면서 걸프해역과 파키스탄 인근해에 군사력을 집중 배치하고,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등 아프간 인접국들의 협력을 약속받으면서 전쟁 준비를 착착 진행시켜갔다.
마침내 테러 26일만인 10월7일 미국-영국 합동군은 테러리스트 빈 라덴을 비호한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보복성 공습을 개시했다.
공습을 개시한지 한달 가까이 지난 31일에는 B-52 폭격기까지 동원, 거의 매일 융단폭력을 퍼붓는 동시에 미국과 영국의 특수부대원들이 아프간내에 비밀리에 침투, 공습 목표물과 오마르 및 빈 라덴의 동향에 대한 첩보를 속속 수집, 전달했다.
미군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96년 탈레반에 의해 축출된 이후 아프간 일부 지역만을 장악한 채 무력투쟁을 벌여온 북부동맹도 대(對)탈레반 공세를 강화했다.
뚜렷한 성과없이 공습이 한달여 지속되면서 무고한 아프간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고 국내외에서 반전론이 제기될 즈음 마침내 북부동맹은 미군의 지원에 힘입어11월9일 북부 거점도시 마자르-이-샤리프를 점령했다. 그 기세를 몰아 북부동맹은 13일에는 수도 카불에 입성했고 다시 25일에는 북부의 또 다른 거점도시인 쿤두즈를 함락했다.
이어 북부동맹은 탈레반의 마지막 거점도시이자 최고사령부가 위치한 심장부 칸다하르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고 미군의 무자비한 공습, 북부동맹의 대공세, 내부분열로 붕괴일로를 걷던 탈레반은 6일 최후 투항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이 와중에서 성전의 대의에 동참하고자 아프간에 온 이슬람 외국인 자원병들이 마자르-이-샤리프 외곽 칼라-이-장히 포로수용소에서 폭동을 일으켜 수백명이 사망하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요원도 1명 죽는 참사가 빚어졌다.
'제2의 베트남전이 될 것', '장기전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미국은 예상보다 빨리 탈레반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아직 빈 라덴과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조직원 색출 및 제거, 탈레반 최고 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의 신병처리, 탈레반 이후 국가 재건 등 아프간 전쟁은 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연합>연합>
두달만의 승리… 美 자존심 회복
입력 2001-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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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0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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