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군은 현재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두 번째로 큰 땅이면서 넓고 깊은 산자락을 자랑하고 있다. 그것은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과 두 번째 높은 명지산을 지니고 있다는 자부심과 맥이 닿는다.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명지산에 올라 굽어보는 경기산하는 지리산에서 맛보는 그것을 닮아 있다. 남한 제일의 한라산이 주는 허탈함이나 중국쪽에서 지프를 타고 오르는 백두산의 경박스러운 편안함과는 다른 눈덮인 명지산을 스스로 오른 뒤 느끼는 경기산하의 그 장엄함이라니…. 그것은 차라리 충격이다.
그리 높거나 멀지 않은 산에서 장엄한 조국산하에 대한 오롯한 감격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마 북으로 경기 제일의 화악산을 오르지 못하는 갈증을 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수려한 가평의 산세는 유명산과 축령산 자연휴양림의 인기에 더하여 경기도가 연인산(1천68m) 일대 40여㎢를 내년 말까지 도립공원으로 지정하기로 해 가평의 지역적 특성을 튼실히 살필 수 있게 됐다.
가평의 가을 맑은 하늘과 햇살은 제철을 만난 운악산 포도의 당도를 높여 경기 제일의 포도 맛으로 거듭나게 했을 터인즉, 아름다워라, 가평이여! 영화 '편지'를 촬영한 곳으로 이름난 '아침고요'라는 싱그러운 이름의 수목원은 가평을 적실하게 알려주는 셈이다.
이렇듯 아름다운 산과 깨끗한 계곡이 어우러진 가평에 산다는 것은 또 다른 내공을 필요로 한다. 자연이 주는 혜택에 반해 가평에는 변변한 종합병원 하나 없어 1시간 이상 걸려 서울이나 강원도 춘천을 찾아야만 한다. 동시에 가평을 종단하는 길은 있지만 횡으로 이어주는 교통망이 없어 여전히 산간벽지의 땅이기도 하다.
그러한 북쪽 땅 북면을 찾아가는 길이다.
가평의 3·1 운동은 북면에서 시작되었다. 목동리에서 훈학하고 있던 기남(沂南) 이규봉(李圭鳳) 선생이 주동하고, 아들 이윤석과 제자 정흥교·최인화 등이 동지를 규합하여 1919년 3월 15일 읍내로 진격하면서 불이 붙었다. 따라서 만세시위 주동자로 처벌받았던 사람들 역시 북면의 목동·이곡·화악·백둔·소법리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니, 이는 이규봉 선생의 깊고 넓은 영향력 때문이었다.
가평역에서 북면 적목리까지는 80리 길이니 걸어 족히 하루 걸리는 먼 거리다. 명지산과 화악산 사이 북면사거리에서 적목리 표시를 따라 좌측방향으로 가평천을 따라가면 버스 종점 용수목에 이른다. 여기서 약간 더 올라가면 38선이 지나는 삼팔교가 나오고 오른쪽 계곡이 석룡산과 화악산 방향의 조무락골이다.
이 곳이 일제시기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던 백백교(白白敎)의 근거지였다. 요즘 모 종교단체 신도들의 암매장 사건으로 떠들썩한데, 이러한 놀라운 일은 이미 80여년 전 300여명을 살해 암매장한 엽기적인 형태로 존재한 일이다.
동학에서 분파되어 백도교(白道敎)를 세운 전정운이 적목리에서 죽고 난 뒤 둘째 아들 전용해가 가평 적목리의 상당한 토지를 근거로 1923년 퇴폐한 민심을 교화하여 광명세계를 실현한다면서 백백교(白白敎)를 세워 포교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뚜렷한 교의(敎義)나 깊은 사상적 내용을 갖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이 상실되고 억압적인 사회 현실과 3·1운동이 좌절되면서 민중의 불안심리는 종말론에 쉽게 경도되었고, 황당한 미래에 대한 욕망과 집단적 최면, 그리고 피갈음을 통한 공범의식은 걷잡을 수 없는 광신의 나락으로 몰고 간 셈이다. 1930년까지 합법적으로 포교를 했던 백백교의 근거지가 바로 이곳이다.
삼팔교에서 가평천 상류를 따라 2.8㎞쯤 올라가면 도로 왼편에 일제시기 경춘철도 임업주식회사 가평출장소 현장사무실이 있었던 장소 맞은편과 이 곳에서 1.2㎞ 올라가면 무주채골과 용소폭포가 나오는데 그 맞은편 계곡 위가 삼육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재림교회(안식일교회)의 적목리 신앙공동체가 있었던 곳이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조국의 독립을 기다리며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 1943년 9월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2년간 70여명의 종교인들이 집단을 이루며 살던 곳이다.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시 가장 큰 장로교와 감리교는 일제에 복종해 교단을 지켰지만 안식교·성결교·침례교(동아 기독교) 등은 저항하여 강제해산을 당했다.
이렇듯 자신의 종교적 양심과 민족적 저항을 깊은 산골에서 화전을 일구며 소극적 저항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가평 적목리 신앙공동체는 1999년 12월 가평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여기서 가평천을 따라 더 올라가면 도마치고개가 나오는데 이 고개를 넘으면 포천과 화천 땅으로 한국전쟁 때 중공군과 영연방(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군대가 서로 격전을 벌였던 격전지이자 지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가평의 또 다른 향토유적으로 현등사 입구 하면 하판리에 있는 삼충단(三忠壇)이 있다. '순국열사 조병세선생 추모비'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면암 최익
가평(4)-경기제일의 산세 '장엄'…북면 가는 길
입력 2003-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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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2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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