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평야에서 세계의 바다로
한남정맥의 북쪽은 한강의 절반을 이루기 위해 물을 모으고, 남쪽은 여러 갈래로 하여 서해로 흘러드는데 그 중 가장 중심이면서 큰 하천이 안성천이다. 정맥의 주봉이라 할 광교산에서 흘러내린 원천천, 수원천이 황구지천으로, 또 용인에서 발원해 진위를 거친 진위천과 합류하고, 정맥의 시작인 칠현산 등 안성 일대에서 모아온 안성천과 다시 합류하여 아산만으로 흘러든다.
#심복사 부처님의 원력
지금은 아산만 방조제 때문에 아산호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민물과 짠물이 서로 벌이는 기세 싸움 꽤나 보았을 현덕면 덕목리에 심복사(深福寺)가 있다. 심복사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걸작 불상이 있어 답사객의 발길을 즐겁게 한다. 이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은 보물 제565호로 지정 받았다. 타원형의 다소 큰 얼굴에 가늘게 뜬 눈을 옆으로 길게 표현하였다. 입은 작으면서 단정하게 다물고 있는데 코끝이 손상을 입어 보수한 것만 마음에 걸릴 뿐 거의 완벽한 불상이다.
쌀 두어 섬이라도 넉넉히 멜 수 있을 것처럼 튼실한 어깨와 떡 벌어진 가슴, 그에 못지 않은 단단한 하체는 절을 찾아온 어느 뱃사람이라도 기죽이고도 남을 만하다. 그런가하면 가슴아래의 띠 매듭이 수줍은 듯 왼손 아래에 들어 있고 섶을 댄 듯한 옷자락 끝단에는 꽃무늬가 어긋나게 중간중간 들어 있어 섬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심복사 주변은 곡부공씨 문중 땅이 절을 에워싸고 있는데 불전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공씨문중 땅 세 평 가량이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실수로 그리된 것인데 문중에서 거세게 항의하면 불전을 다시 지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문중의 어른이 나서서 “공자님이나 부처님이나 모두 다 성인이시고, 우리 공씨 문중 사람들이나 스님들이나 모두 그 후손들인데 그까짓 세평 땅 위에 부처님이 앉는 것이 무슨 대수이더냐 오히려 좋은 일이다”라고 하여 무마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홀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서로 어울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비로자나불이 표방하는 화엄세계이다. 특히 온 세상을 두루 비춘다는 부처가 비로자나불이니, 이 비로자나불의 원력으로 공자의 자손들과 부처의 자손들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먼 훗날 행복하게 만난 현장이리라.
#선무공신 1등 원균 장군
안성천과 진위천이 합류하는 부근에 도일천도 한 발 끼워 넣는데 그 도일천을 따라 끝까지 오르면 도일동 신촌에 원균 장군 묘가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39년(1604) 원균은 이순신, 권율과 함께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으로 책록되어 좌찬성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되고 원릉군(原陵君)에 추봉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대부분 원균을 패장으로 기억하거나 이순신의 능력을 가로막은 라이벌, 혹은 조정을 농락한 간신으로 추억하고 있다. 또 하나의 역사왜곡이 진행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원균은 용감한 무장이었다. 다만 이순신보다는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싸웠다. 정상적인 단계를 밟아 승진한 자신에 비해, 자신의 실력보다는 유성룡 등의 추천에 의해 종6품 정읍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로 파격 승진한 이순신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수 없었다. 게다가 원균은 이순신과 서울 건천동의 한 마을에서 살았고 이순신보다 다섯 살이 많았는데 이순신이 상관으로 임명되자 반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조수정실록'에, “처음에 원균이 이순신에게 구원병을 청하여 적을 물리치고 연명으로 장계를 올리려 하였다. 이때 이순신이 '천천히 합시다'라고 말하고는 밤에 혼자 장계를 올리면서 원균이 군사를 잃어 의지할 데가 없었던 것과 적을 공격함에 있어 공로가 없다고 진술하였으므로, 원균이 듣고 대단히 유감스럽게 여겼다. 이로부터 각각 장계를 올려 공을 아뢰었는데 두 사람의 틈은 이때부터 생겼다”고 기록하였다.
원균은 불패의 장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공공의 적'이 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공신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심지어 원씨 성을 가진 사람들마저 원균의 후예라고 놀리기에 이르렀다. 어찌된 일일까? 여기에는 '이순신 장군 영웅 만들기' 작전이 숨어있다. 아니 영웅을 넘어서 '성웅(聖雄)'으로 까지 추대한 것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 원균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싹을 틔우고 영화와 소설, TV드라마 등이 불을 질러 원균을 '두 번 죽인'것이다.
영화와 소설 등은 그 속성 때문에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다른 한 사람이나 세력을 아주 못된 것으로 표현한다. 우리에게 원균에 관한 한 역사는 없고, 소설과 영화 등의 줄거리만 남아 있는 것이다.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난중일기'를 전혀 검증하지 않고 액면 그대로 믿는 것도 불찰이다. 그렇다면 원균에게는 일기를 쓰지 않은 잘못이 있을 뿐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그야말로 민족의 영웅, 아니 성웅으로 부르기에 손색
평택(2)-너른 평야 발길 닿는 곳 유적·선현 체취
입력 2004-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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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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