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땅

경기 땅에서 한강 수운의 넉넉한 혜택으로 축복받은 땅은 남한강 여주와 바다 쪽 강화도, 그리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파주를 꼽을 수 있다. 풍부한 물산에 기반한 찬란한 문화유산과 자연 풍광은 이 고을들을 기전의 복전이 되게 했다. 특히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 물의 양수(兩水)에 비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섞이는 교하(交河)의 넉넉함을 파주 땅은 지니고 있는 셈이다.
 
두 강이 몸을 섞는 교하의 장관을 성동리 오두산은 누천년 지켜봤고 물속 고기들도 기꺼워하건만, 지금의 사람들만이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경계와 감시의 눈초리로 강 너머를 살펴 볼 뿐이니.
 
두 강물이 섞여 조강(祖江)이라는 이름으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길목, 오두산성이 있는 곳에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있다. 백제와 고구려가 서로 빼앗으려 온 힘을 다했던 이 곳에 또 다시 남북이 대치한 채 서 있는 모습이고 보면 역사의 혹독함을 느끼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만들어지기 시작한 통일전망대라는 것이 있다. 500원 짜리 동전을 넣으면 작동하는 망원경을 통해 500원 어치 만큼의 통일을 갈구하는 우리의 얄팍한 통일의지는 건너편 동포들의 실팍한 삶을 구경거리 삼아 노닥거릴 뿐이다. 통일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토론과 사색의 공간이 아니라 남북의 대치상황 만을 교묘히 각인시키는 분단의 교육장이던 그런 전망대에서 무슨 통일을 전망하란 말인가?
 
그러나 6·15공동선언 4주년을 맞이한 6월의 파주는 또 한번 역사 속에서 기꺼운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각기 남북은 그동안 통일을 위한 노력이란 이름으로 서로에 대한 불신만 높여왔던 대남·대북 방송 스피커를 비롯한 각종의 선전물을 철거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서로를 쉽게 바라 볼 수 있는 곳에서 체제 선전물이 철거된 온전한 산하의 건강한 모습을 볼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통일의 염원이 반통일의 고함을 잠재워 가는 즈음이다.
 
이것은 2000년 9월18일 역사적인 경의선 복원 및 도로 연결을 위한 기공식이 임진각에서 열린 이래 파주는 통일의 염원을 담은 민족의 설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끼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파주는 통일의 길목으로 여타 지역보다 통일의 기대가 높고 크다. 그 당연한 염원과 소망은 임진각, 판문점 그리고 땅굴로 대변되는 분단의 상징물들로부터 파주를 자유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단을 바라보며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장단의 사천강을 따라 만들어진 휴전선 탓에 임진강 너머 파주 장단면을 곧잘 이북으로 착각하곤 한다. 사천강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진 휴전선은 널문이 판문점에 와서 동북으로 방향을 틀어간다. 해서 오두산전망대에서 반구정을 지나 임진각까지의 임진강은 여전히 철책이 드리워진 자유롭지 못한 강이다. 물론 그 부자유는 한강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그러나 올 봄부터 두지나루에서 임진적벽과 고랑포를 거쳐 장파리를 오가는 황포돛단배는 자유로운 임진강을 즐겁게 만들었다.
 
임진적벽이 장단적벽으로 이름을 날렸듯이 임진강의 북쪽 장단은 조선시대 이전에는 파평과 교하, 적성을 능히 감당하고도 남았던 것 같다. 그것은 여주 신륵사와 강화 전등사에 견줄만한 번듯한 사찰이 파평·교하·적성을 포함한 파주 땅에는 없었다. 율곡 이이로 대표되는 조선 성리학의 또 다른 아성이 파주였고 자운서원과 파산서원, 용주서원이 줄 지어 서 있었던 것과 대비된다.
 
소령원의 원찰인 보광사(普光寺)도 실상 양주 백석면 보광사에서 파주 광탄면 보광사로 바뀐 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고, 임진강 너머 장단의 화장사(華藏寺)가 파주의 그것들을 넉넉하게 아울렀기 때문이다. 송암스님과 더불어 우리나라 범패의 양대 산맥이었던 벽응스님이 파평면 장파리에서 태어나 흉년으로 화장사 불목하니가 된 아버지를 따라 8살 나이에 화장사에 들어간 사실과도 연결된다.
 
더욱이 공·순·영릉과 인조의 장릉이 파주 땅에 있음에도 이들 왕릉에 대한 이름난 원찰이 없다는 점도 유의해 볼 대목이다. 분단으로 잘린 장단 땅은 파주의 장단면으로 편입되었고, 민통선 안의 몇몇 마을은 장단 콩으로 장단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판문점과 대성동
 
장단 땅, 지금은 장풍군 판문점리로 이름을 바꾼 그 곳에 판문점이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로 더욱 이름을 알린 그 곳은 여전히 선택받은 자들의 안보관광 코스에 불과하다. 외국인들과 유력한 기관의 힘을 빌려야 되는 아직도 힘없는 일반인들에게는 접근이 쉽지 않은 땅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임진각 앞에 서곤 했다. 더 이상 북쪽으로 가는 길을 막고 선 원한의 철책을 부여잡곤 하였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너머의 갈 수 없는 땅에 대한 원망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물기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리고 종이와 헝겊에 통일을 염원하는 글귀를 적어 철책에 묶어 강 바람에 흐느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