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은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강원도를 거치며 남하하다가 남대천, 영평천, 풍천, 그리고 차탄천을 흡수한 한탄강과 만나면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해로 들어간다. 한탄강과 만나기 전까지 임진강은 징파강(澄波江)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원래의 연천 땅은 한탄강과 징파강 사이의 동북지역인데 징파강과 임진강 사이의 마전현(麻田縣)과 그 북쪽의 삭령현(朔寧縣) 등 세 고을을 합쳐 한 군을 이루게 되었다. 임진강의 수운(水運)구역은 현재 북한 땅인 강원도 이천군 안협면 포촌(浦村)에서 시작되어 마전까지 60㎞, 마전에서 고랑포(高浪浦)까지 20㎞, 그리고 고랑포에서 하구(河口)까지 40㎞ 등 세 구간으로 나뉘는데, 태종 때 삭령과 안협을 통합하여 안삭(安朔)으로, 마전을 연천에 붙여 마련(麻漣)이라고 고친 것에서 보듯이 고을을 분리하거나 합칠 때마다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연천의 주요 역사유적지는 임진강 수운의 요지를 따라 가면 만날 수 있다. 고랑포에는 경순왕릉이 있고, 마전에는 숭의전(崇義殿)이 있다. 미수(眉●) 허목(許穆, 1595~1682)의 묘도 징파강 상류인 왕징면 강서리에 자리하고 있다. 수운을 따라 접근이 용이한 곳을 국가에서는 물론 사가(私家)에서도 선호하였던 것이다.
연천의 근기성(近畿性)은 이 강상로를 고려할 때 이중성을 갖는다. 지금은 같은 연천군에 속해 있지만 과거 수운의 혜택 범위 안에 있던 마전현과는 달리 꼬박 육로, 즉 철원로를 타야하는 연천현은 근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서울 관리들이 부임지로서 땅도 협소하고 백성 수도 적었던 마전보다 연천을 더 꺼렸는데 그 이유는 이 곳이 국왕이 자주 친임(親任)하는 강무지(講武地)여서 이로부터 얻게 되는 긴장감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서울 다니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징파나루는 연천과 마전을 잇는 나루인데 징파강과 한탄강의 합류점 상류, 즉 현 왕징면사무소 부근인 무등리로 추정된다. 옛 지도에는 유포(楡浦), 또는 유연진(楡淵津)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곳에서 강이 감입곡류(嵌入曲流), 즉 깊은 골짜기를 형성하면서 사행(蛇行)하여 서쪽에서 북쪽으로 꺾어지는 곳에 당포성지(堂浦城址)와 당포나루가 있고 북쪽으로 흐르던 강이 다시 남쪽으로의 곡류를 시작하려는 곳에 석봉(石峯), 즉 잠두봉이 있으며 그 위 북쪽으로 숭의전이 있다. 고려 태조의 원찰 앙암사(仰巖寺)가 있던 이 곳을 옛 사람들은 앙암강(仰巖江)으로 불렀다. 그러나 앙암이 아미(阿彌)로 바뀐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조선정부는 이전 시대의 시조(始祖)와 현군(賢君)을 대우하는 차원에서 이들을 위한 사전(祀典)제도를 마련하였다. 평양의 기자전(箕子殿)은 광해군 때 숭인전(崇仁殿)으로 개칭하고 후예인 선우씨(鮮于氏)에게 전수감(殿守監) 직을 세습하게 하였다. 경주에 있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묘(朴赫居世廟)는 세종 때 숭덕전(崇德殿)으로 이름을 바꾸고 박씨(朴氏)를 참봉(參奉)으로 충당하였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태조 1년(1392)에는 마전 앙암사터에 고려태조묘(高麗太祖廟)를 세운 후 왕씨 후손인 왕우(王瑀)를 귀의군(歸義君)으로 봉하여 혜종(惠宗) 이하 공덕이 있는 고려왕을 함께 모시도록 하였으며 문종 때 숭의전(崇義殿)으로 새 이름을 짓고 역시 후예인 왕씨에게 수감직을 세습하게 하였다. 남효온의 '추강집(秋江集)'을 보면 1453년에 '숭의전’이 과거시험문제로 나왔는데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숭의전이 마전에 있어 이를 관리하는 집을 대대로 복호(復戶)시켜주네(崇義殿在麻 世世復其家)”라는 시를 지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미산면 아미리에는 개성 왕씨가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현재 정전에는 태조를 비롯하여 현종, 문종, 그리고 원종 등 4위가 봉안되어 있다.
미수 허목의 본관인 양천(陽川)은 한강하류에 있던 고을이었으며 현재도 서울에 양천구가 있어 그 이름을 잃지 않았다. 이들이 고양, 파주 등에 세거하다가 임진강을 따라 마전 지역인 왕징면 강서리에 터를 잡은 것은 미수의 증조부 허자(許磁, 1496~1551) 때다. 미수의 아버지 허교(許喬)는 연천현감을 지냈다. 묘역이 민통선 안에 있어 어렵게 들어간 현장이었지만 6·25 전쟁 때 파괴되어 없어진 미수 신도비 때문에 아쉬워하던 차에 보물급 문화재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그것은 15세기 후반에 조성된 석관(石棺) 2기로 미수의 5대조인 합천공(陜川公) 허훈(許薰)과 배위(配位)인 정경부인(貞敬夫人) 고성(固城) 이씨(李氏)가 그 주인이다. 앞에서 보았을 때 좌측이 합천공, 우측이 정경부인의 것으로 1994년에 의정부 송산(松山)에서 이 곳으로 이장할 때 발굴된 것이라고 한다.
임진강의 최대 지류인 한탄강은 북한 땅인 평강군 현내면 백자산에서 발원하여 신철원을 지나 연천읍 고문리에 이르기까지 높은 산지의 좁은 계곡을 흐르면서 용암대지와 수직단애를 만들었다. 고문리의 재인폭포
연천(3)-강 따라 구비마다 역사유적을 담고 있는 곳
입력 2004-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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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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