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남북한 고고학자들이 대규모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2개월여 동안 개성공단 터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2000년 초 남북한간 문화재 연구 교류가 이뤄진 이후 사상 첫 북한지역에 대한 남북한 공동조사였다.
 
이 발굴조사에 남측 대표로는 한국토지공가 토지박물관을 비롯해 경기도박물관,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 고려문화재 연구원, 한국문화재보호재단발굴조사단 등 5개 기관 20여명이, 북측 대표로는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소속 고고학자 40여명이 참여했다.
 
유물산포지 12곳, 10만여평에 대한 공단 터에서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수천 점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3년여 동안 꾸준히 옛 경기의 역사·문화를 되짚어온 '다시보는 경기산하'팀은 대장정의 막을 내리며 경기의 근원인 개성을 다루고 있다. 이번 '개성2편'에서는 개성 산업공단 발굴에 참여하고 돌아온 경기도박물관 송만영 민속미술부장으로 부터 '개성 발굴체험기'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발굴단원 집결지인 분당을 떠나 도라산역 부근의 남쪽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하는 데에는 1시간 반이 걸렸으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데에는 채 10분도 안 걸렸다. 올 여름처럼 가시거리가 좋은 날이면 자유로에서 개성 송악산(松岳山)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보이는 거리이건만, 가는데 걸린 세월은 반 백년이 훌쩍 넘어버렸으니 10분도 걸리지 않은 북녘 땅까지의 거리감이 나로서는 당혹스럽다.
 
개성(開城)은 475년 고려왕조의 도읍지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반인에게는 개성하면 으레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고려왕조의 궁궐터 만월대(滿月臺)와 이방언과 정몽주의 악연이 서린 선죽교(善竹橋) 정도만을 떠올리겠지만, 개성에는 많은 불교 문화재와 왕릉급 고분, 성곽 등이 분포하고 있다. 개성 고려박물관에서 구입한 '개성의 옛자취를 더듬어'라는 책에는 군사, 궁전, 종교, 천문, 무덤 등으로 항목을 나누어 관련 유적을 소개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고려시대의 것이다. 실제 2000년에 북한에서 집계한 개성의 유적, 유물 출토지는 148개소로 파악되는데, 청동기시대 유물 출토지 8개소와 조선시대 유적 18개소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고려시대의 문화유산이다.
 
필자가 최초의 본격적인 남북한 공동 발굴조사가 될 개성공단 발굴조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경기도 박물관과 개성박물관과의 학술교류를 위해 사전에 기초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업무상 목적도 있었지만, 전공이 고고학(考古學)인지라 개성지역에 어떠한 고고유적이 분포하고 있는지 궁금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북쪽에서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서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전하나, 실물 자료가 없어 믿기가 어려우며 신석기시대 유물 또한 출토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의 출처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에 들어와서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과 세형동검(細形銅劍)을 비롯한 각종 청동기들이 개성시 개풍군, 판문군, 장풍군 등지에서 다수 발견되었는데, 이들 유물들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주민들에 의해 채집된 것이라고 한다.
 
하여간 개성시에 청동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점은 이 일대에 유력한 초기 정치체들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인데, 필자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그 흔적을 찾고 싶었다. 개성시 장풍군 장학리에 소재한 적석묘(積石墓·북측에서는 '돌각담무덤'이라 부른다)는 개성지역에서 몇 안 되는 발굴 사례인데, 이러한 무덤이 임진강 유역의 파주와 연천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북측은 이러한 무덤을 백제 무덤으로 보면서 고구려족의 한 갈래가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한 근거로 보고 있다.
 
개성공단 발굴조사에는 북측에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소속 고고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는데, 당의 지시에 의해 그들이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하고 개성공단에 바로 투입되었다는 소문이다. 경제 사정이 열악한 북한이 개성공단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남쪽의 발굴단은 토지박물관을 중심으로 필자가 몸담고 있는 경기도박물관과 기전문화재연구원, 고려문화재연구원,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소속의 연구원 각 한 명씩이 파견되었는데, 항간에는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다.

개성공단 발굴조사단에 합류하던 첫째 날은 지치고도 매우 긴 하루였다.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때의 긴장감이 풀리지 않은데다가 눈앞에 펼쳐진 생소한 풍경들을 눈으로 주워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혹여 말실수나 해서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는데, 북측 고고학자들을 만나면서 좀 안심이 되었다. 북측 고고학자 중에는 논문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북녘 땅에 지인(知人)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 것이 위안이 되었나 보다. 필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