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변에 난립해 있는 무허가 건축물을 철거하면서 이곳에 살던 주민들
을 대거 이주시키기 위해 새롭게 개발된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신도시와는 달리 '선입주 후개발' 정책에 따라 도시기반 시설
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주가 시작돼 초기부터 불량주택이 난립하
는 등 도시개발에 많은 난맥상을 드러냈으나 최근 고도제한 완화와 맞물려
재개발 추진에 탄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분당의 탄생과 함께 서울의 '베드타운'이란 또다른 오명을 갖게 됐
다. 성남의 이같은 태생적 한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선 초기부터 남
원 윤씨와 의령 남씨, 청주 한씨, 전주 이씨 등 많은 사대부들이 중앙정치
권을 떠나 성남에 은거하는 일이 잦았다. 서울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결코 서울에서 소외되지 않는 최적지인 까닭이다.
그만큼 성남 전지역에는 사대부의 선현분묘가 폭넓게 퍼져있다. 성남시가
지정한 향토유적 3곳과 도 지정 기념물 4곳이 모두 고려말과 조선시대 문인
들의 묘역인 점만 봐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향토유적=성남시의 향토유적 제1호는 조선후기 여류문인으로 이름을 날
린 '정일당 강씨 묘'다. 지난 86년 3월에 향토유적으로 지정됐으나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상당기간 방치되다 지난 2000년 파평 윤씨 문중의 협조
를 받아 사당과 묘지를 재조성, 정일당의 지극한 효성과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정일당유고'라는 저서로 수십편의 시문을 남긴 정일당은 시어머니 지일당
전씨와 시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는 일화가 지금도 입을 통해 전해져오고 있
다. 고려말기부터 조선초기까지 학자들과 두루 교류하며 높은 덕으로 존경
을 한 몸에 받은 둔촌 이집선생묘와 고려에 대한 절개로 이성계조차 탄복시
켰다는 송산 조견선생 묘가 향토유적 제2, 제3호로 각각 지정돼 있다.
송산은 조선왕조가 개국하자 두류산(현 지리산)으로 들어가 이름을 '종
견'이라 바꾸고 은둔생활을 했다. 태조가 선생의 절개를 찬양하고 재주를
아껴 벼슬을 내렸으나 송산은 이마저 사양하고 청계산에 은거하며 고려 송
도를 향해 통곡하다 생을 마쳤다고 한다.
#기념물=기념물도 중앙 정치무대에서 활약을 하다 생을 마감하고 서울과 인
접한 성남 땅에 묻힌 고매한 선비의 묘역들이다.
중종 임금의 후손으로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워 오위도총관 등을 역임한 이
수 선생묘가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돼 있다. 또 고려말 성리학의 거두인 이
색의 후손인 한산 이씨 묘역이 기념물 제116호로, 인조 즉위시 우의정과 좌
의정·영의정을 두루 역임한 이경석 선생묘가 기념물 제84호로 각각 지정
돼 있다.
기념물 118호로 지정된 이팽수와 이경인 묘가 있는 전주 이씨 태안군파 묘
역은 해발 90m 정자말골 2천584㎡ 부지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유형문화재
봉국사 대광명전과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요절한 현종의 두딸 명선, 명혜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비의 주선으로
금강산 승려 축존이 지었다는 봉국사 대광명전은 6·25 동란으로 파괴됐다
지난 74년 현재의 모습으로 해체복원됐다. 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
배지붕을 지닌 주심포 양식으로 전각 내부의 불단위에 화려한 닫집이 마련
돼 있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빼어난 조망의 망경암의 마애여래좌상은 자연암벽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새긴 것. 이 곳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걸
쳐 임금이 친히 거동해 나라와 백성의 안락과 수복을 빈 장소로도 유명하
다.
이밖에도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올라온 봉수를 서울로 잇는 도내 마지막 봉
수인 천림산 봉수대와 청계산 천주교 성지 등도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문화
재로 평가받고 있다. 사송동 지석묘군과 서현동 백제거주지 등 선사유적지
들도 보다 정밀한 지표조사를 거쳐 체계적인 발굴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화계 안팎의 주문이다. <성남>
◆ 문화유산 192개 재조명·발굴
성남시는 다른 시·군에 비해 향토유적이 매우 적은 편이다.
정일당 강씨 묘와 둔촌 이집 선생묘, 송산 조견 선생묘가 향토유적의 전부
니 묘지를 빼면 남는게 없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법 하다.
그러나 지난 2000년 5월부터 1년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이 주관해 역사
분야와 민속분야 등 7개 분야에 대해 광범위한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남은 가히 '문화재 도시'라고 불릴 만큼 광범위하고 다양한 문화유
산이 산재해 있음이 확인됐다.
당시 재조명되거나 새롭게 발굴된 문화유산만 192개에 달한다.
시대별로 보면 선사시대인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와 유물 산포지가 8개소, 삼
국시대 2개소, 통일신라시대 2개소, 고려시대성남>